박완서에게서 '놓여지다'

2008. 12. 17. 19:43Diary

이상하리만큼 박완서씨의 작품에서 놓여지기 힘들다.
내 또래의 사람들에게서 많이 알려진 것 같지 않고,
토지를 쓴 박경리씨처럼 대작으로 알려지기 보다
'나목'이나 '그 많던 싱아는 누가다 먹었을까.'와 같이
다소 우울한 짧은 이야기들이 있으니.
그런 이야기들 밖에 없다가 아니라, 그런 이야기들이 더 잘 알려져 있으니
활발한 내 또래의 남성들에게 박완서라는 작가는 다가갈 기회나 다가갈 마음도 그리 없을 것이다.

그런 박완서씨의 소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처음 읽었던 박완서씨의 글들이 주었던 타성 때문이다.
이르면 50년대부터, 늦으면 21세기 초입에까지,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집 그리고 자신의 일생을 담은 것과 같은 자전적 소설로써
마치 그 스스로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물론 그에 대한 관심으로 그의 삶의 프로파일을 조금은 알고 있으니,
그 이야기들의 속 이야기들이 작가 자신의 삶의 진실이 아님은 알고 있지만,
처음 접했던 그의 글들이 주었던 그 타성이 쉽게 사그라들진 않는다.

나도 내 편지와 일기장과 블로그에 나의 이야기를 담는다.
언젠가 예민한 고1때는 내 이야기를 소설로 엮어보고 싶은 생각을 했더랬다.
그리고 그 생각을 지지해준 한 친구를 PC통신을 통해 만났더랬다.
그리고 엊그제 형에게서 받은 전화를 모티브로 짧은 글을 써봤다.
내가 나를, 내 안의 사념 그리고 욕망과 같은 거창한 것을 담아낸 글은 아니지만,
나와 관련된 일화들을 그가 말하는 방식대로 재구성해보려 했다.
내가 쓴 그 글을 마치 사실인양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겠다 생각하니
자꾸 글을 쓸 수록 나의 치부가 들어나는 것만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나는 글을 쓰기위해 조사를 마다하는 전문 작가도 아닐 뿐더러,
내 글을 쓰기위해 아직 어휘며, 생각이며, 내 삶을 벗어날 만큼의 유연함과 포용력이 내겐 부족한가 보다.

입이 바싹바싹 타오르듯이, 난 내 이야기에 대한 갈증으로 말라가고 있다.
이것도 삶의 일부 이겠거니 하지만, 내가 만들었다기 보다 내가 방관하고 있었던 것만 같아
스스로 더 말라가게 방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질려 세상으로 눈을 돌렸을 때,
박완서씨를 보지 않고, 내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것같다.
그의 글에서처럼 비로소 '놓여질 것'만 같다.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청동 갤러리 127-3  (0) 2008.12.20
내게도 형제가 있었다.  (0) 2008.12.15
눈이 시큼하다.  (0) 2008.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