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김승옥의 글과 '무진'을 곱씹어보면서.

2017. 7. 31. 09:31Diary

주말 중에, SNS를 통해 짙은 안개 속에서 캠핑하는 사람의 사진을 보았다. 

사방이 안개에 쌓여 10m 밖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광경에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떠올랐다.


1.
사실 '김승옥의'라기보다 '무진기행' 그 자체가 떠올랐다.

그러다 누구의 작품이였더라?

작가를 검색하다, 김승옥 보다 더 유명한 이름,

김유정의 '무진기행'도 있다는 걸 알았다.


2.
그래봐야 자발적으로 읽은 소설도 아닌데,
왜 안개하면 '무진기행'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입시, 수능을 위한 꼭지 지문으로 처음 접했을 텐데.
안개가 명산물이 가상의 공간 '무진'을 여행하는 윤희중의 이야기.
서울에 있는 아내와 잠깐 떨어져, 외부와 분리된 공간 무진에서 일탈을 꿈꾸는 이야기.
서울이라는 각박한 도시의 공간. 그 곳에서 떠나고 싶어하는 도시인의 이야기.
정작 '무진기행'을 읽고 느끼기보다 외우기를 반복하던 그 때는,

안개가 잦았던 시골 고향에서 살고 있던 때였다.

오히려 나에겐 무료한 시골보다 역동적인 서울(도시)가 안개 밖의 일탈의 공간이였다.


3.
월요일 아침, 옅은 안개를 지나자마자 폭우가 쏟아졌다.
와이퍼로 아무리 앞 창의 빗물을 벗겨내려고 해도,
앞의 풍경을 보기가 어렵다.
주말 중, 계속 머리속을 관통하던 '무진기행' 속 안개로 둘러쌓인 그 공간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내 앞의 비는 나를 가로 막는 장애물,
폭우로 빼곡한 이 공간은 안개로 채워진 무진과 같은 공간.'
이 빗길을 뚫고 가야할 곳은 무진기행 속의 '서울'과 같은,
내가 벗어나고 싶어하는 일상의 공간.


4.
문학/예술이 좋은것이, 자주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면에서 작가의 해석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원작자의 해석과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무진... 안개 霧  나루 津,
안개가 자욱한 나루. 그 것만으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는 공간이다.
없을 無 참 眞.
그 무진을 '진실이 없는', 실존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해 내면 어떨까?
애초에 우리에겐 '일탈'할 수 있는 공간이란게 없다면.

단지 어떤 공간에서, 익숙지 않은 의미를 '일탈'로 뒤짚어 씌워내는 것이라면.

무진이라는 공간이 사실은 서울 밖이 아닌, 안개 자욱한 한강변의 풍경이라면...

우리의 일탈은 물리적인 공간으로부터의 분리라기보다,

공간의 의미부여에 따를 수도 있겠다 싶다.

'무진'이라는 하나의 단어에 여러 의미를 뒤집어 씌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