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바리데기

2009. 4. 14. 12:21Book Reviews

 

 

황석영씨의 '바리데기'를 덮으니 시계는 정확히 2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그렇게 늦은시간까지 책을 본 기억도 얼마 안되지만,
또 그렇게 책에 몰입해서 끝까지 잡고 있었던 것은 처음이었을 정도로
이 책은 날 끌어당겼다.
북한의 청진에서 무산으로, 그리고 두만강을 넘고, 다시 가족을 찾아 북한으로...
그리곤 다시 중국의 다롄을 거쳐 런던으로 오기까지.
18세 바리가 밟고 거쳐간 곳은, 풍요로운 '남선'의 또래들이 상상하기에는
쉽지 않은 거칠고 험난한 여정의 길이었다.
런던의 '앨리펀드 앤 캐슬'역 인근의 네일샾에서 마사지사로 일하다
파키스탄인 아파트 관리자의 손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잃고
20살이 안되는 바리의 인생 이야기속에
1990년대 초반 북한의 대기근과 남북 정상회담
세기말의 밀레니엄,
911테러와 런던 도심 & 지하철 테러등...
한 개인사와 닿기 쉽지 않은 굵직한 사건들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어떻게 우리가 그런 사건들을 우리와 구별짓기를 해왔었는지 느끼게 해주었다.

바리를 뉴욕이 아닌 런던으로 이끈 작가 황석영씨는 꽤 오랜 기간동안 소설을 위해 준비한 듯하다.
그의 말을 빌어, 식민지 국가의 사람들로 넘쳐나는 런던의 모습과 인종분포,
그 안에서 벌어지는 차별의 모습들을 그리기 위해 뉴욕보다 런던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인듯하다.
이전 2월경에 다녀왔던 런던. 그리고 내가 이틀을 머물렀던 '그' 앨리펀드 앤 캐슬 지역은
역시 영국 본토인보다, 유색의 흑인과 황인 등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머물고 있었음을 기억해 냈다.

어쩌면 런던에 사는 친척의 이름과 주소만을 희망으로 삼고 아프리카를 횡단한 그 불법입국자처럼,
바리처럼,
나 또한 그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희망으로 아무런 연락처도 없이 런던행 비행기에 실었던 내 모습이,
그 희망을 품었다는 단 한가지 사실만으로 너무나 닮아 있었다.

어쩌면 바리가 갈급했던 그 '생명수'는 조금씩 더 나아지리란 희망,
미움과 증오를 삭혀 버리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내 희망을 안고 멀리 서천 런던을 향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움과 증오의 싹을 안고 갔었으니까.
그리고 단 5분간 느꼈던 그 숨결에 눈물과 함께 미움과 증오보다
그 사람을 포용해야겠다는 마음을 안고 돌아왔었으니까.

여러번의 눈물을 흘리면서, 내 이야기인듯인양 '재밌게' 읽었다.
나와 구별짓지 않고, 내재화 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바리데기' 그 이야기를 바리의 이야기이면서도 내 이야기로 읽어내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