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물 소리, 다시 황석영 작가의 글을 읽을 즈음에

2012. 5. 4. 14:46Diary

여울물 소리.


황산벌, 탈라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굵직한 사건들이 벌어지던 평원과 그 곳을 흐르는 큰 하천들이 역사의 무대였다면, 얕은 개울을 세게 흐르는 물살이 만들어 내는 소리. 여울물 소리가 들리는 곳은 숲 속이나 산이 끝나고 평지로 이어지는 밭과 논이 있는 민초들의 공간이였다. 

 그 공간에 엮인 이야기가 시간과 의미로 제단되어 기록되면 역사가 되지만,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면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된다. 나에게 작가는 그런 공간을 오가며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다. 


 황석영 작가의 이야기 중에 가장 공감을 끌어냈던 글이 '바리데기'이다. 그는 방북과 망명생활, 그 사이 런던의 앨리펀트앤 캐슬역 인근에 머물며, 이야기에 쓰일 공간과 이방인으로서의 느낌을 기록했고, '바리공주' 설화와 이어 글로 담아낸게 소설 '바리데기'였다.

 나 또한 무작정 사람을 만나기 위해 무방비로 흘러들어갔던 곳이 그 앨리펀트앤 캐슬역 인근 한인 민박집이였고, 바리가 걷던 역 인근의 거리와 그 구석을 이방인의 느낌을 한 껏 안고 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 여운이 바래기 전에 다시 내 공간으로 돌아와 읽은 첫 이야기가 '바리데기'였으니 공감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다.


믿음의 깊이에 비례해 배신감도 깊어진다고 했던가. 지난 2009년 5월 14일.

MB의 중앙아시아 방문 즈음에 대통령 특사로 황석영씨가 MB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방북과 오랜 망명생활이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소신이란 '대의적' 측면에서 공감하고 나름 존경해 마지 않았던 그 작가가 MB의 정치쇼에 출연하다니. 정권말이 된 지금에서야 당시 MB의 중앙아시아행은 한반도의 평화정책이 아닌 이미 맺어진 자원개발 계약을 자신의 공으로 만들려던 일련의 사기적 '자원외교행보'의 일부란 게 공공연한 사실로 밝혀져 거대 스캔들 조짐이 보이고 있다. 다행히 황석영 작가는 당시 그를 지지하던 시민과 각계의 거센 반발로 스스로 특사 자리를 버리고 다시 작가의 길을 가게 됐다. 하지만, 난 그해 5월 '바리데기' 책을 버리며 '변절자'의 굴레를 작가에게 씌웠고, 바리데기 이야기는 기억의 한켠에 접어두었다.(관련글 '오늘 황석영씨를 보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 대한 불편한 마음도 조금식 삵아갈 즈음, 그의 등단 50주년에 시작되는 '여울물 소리'가 지인이 몸담고 있는 출판사 웹페이지에 연재됨을 인연으로 다시 그의 글을 읽고 있다. 인간은 합리화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마침 '여울물 소리'의 배경이 되는 전라도 그리고 19세기 말 어수선한 그 시기. 민초들에 의해 쓰여졌던 역사적 이야기 '동학농민혁명' 즈음하여 '여울물 소리'의 현재가 시작된다.


<마을과 읍을 있는 큰 길이 '동학농민군진격로'로 지정되었고, 올레길처럼 여러 갈래 코스로 짜여진 마실길이 되었다. 마을 어귀에 세워진 푯말. 전북 고창군 무장면>


여행을 준비하다 들렀던 지난 4월 초 내 고향 마을의 어귀에 '동학농민군진격로'라는 다소 호전적인 이름의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나름 최신 기술에 익숙한지라 인터넷 구글지도로 검색한 그 길은 학창시절 내가 걸었던 읍에서 시작해 내가 살던 마을을 지나가는 큰 길이였다.
 나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한 세기 텀을 사이에 두고 다시 이야기로 황석영 작가에 의해 쓰여진다며, 다시 그의 이야기를 읽어야할 이유로 합리화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