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을 구하는 코미디 영화를 한 편 보고나서,

잠을 자고 나면

내일은 아침 일찍 다시 청주로 내려가야한다.


선잠 자듯이 자다 깨서 받은 6살 터울의 친 형의 전화.

'인생 짧으니까, 행복하게 살아야지.'


그래...

하고 싶은거, 갖고 싶은거 다 갖는다면 행복하겠지.

그런데,

내 손에 쥔다고 그게 내것이 될까?


우울해질 때면,

이게 정말 내것이 맞나 싶어진다.

그래서 갖고 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곤 한다.


더 갖기 위해서,

그릇을 키우거나 그릇을 비우거나.


지금은 비워야할 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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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충북 오창으로 차를 몰아 간다.

여러 차선에 차들이 걸쳐져 있다.

가장 왼쪽 차선들부터 막히기 시작한다.


진입해오는 도로의 구조에 따라,

왼쪽 차선들이 막힐 수도 있겠지만,

보통 저속차량은 오른쪽 차선을 이용하는게 규정이기에 

왼쪽 차선부터 막히기 시작하는 것은,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비어 있는 추월차선'을 이용해서 

더 빨리 가고자 하는 생각이 겹쳐져서일 거다.


내 흐름, 속도에 맞춰 오른쪽 차선으로 가게 되면

나보다 더 급한 사람, 더 빨리 가고자 하는 차량을

놓아주게 된다.


반대로 

왼쪽차선, 추월차선을 점거한 채로 달리는 것은,

나보다 더 급하거나, 더 빨리 가고자 하는 차량을 붙잡아두는게 된다.


단지 추월차선만이 그럴까?

고속도로가 내리막에서 오르막으로 길게 뻗은 곳을 보면,

2~3차선을 평행으로 달리고 있는 트럭들 앞에 텅비어 있는 도로를 보게 된다.

그 뒤로는 승용차를 비롯한 여러 차들이 빽빽하게 붙어서 달리고 있다.

나의 흐름만 생각하고,

도로의 기본 규칙을 아랑곳하지 않다보면,

누군가의 앞길을 막아서게 되는 것이다.


왼쪽 1차선에는 '추월차선'이라고 씌여져 있다.

사실 각자 급합, 흐름과 사정에따라

앞의 차를 피해서 갈 수 있는 일종의 회피로 역할을 한다.


그런 회피로가 막혀 있을 때의 답답함이란,

마치 내 앞길이 시야에 들어오지만,

누군가 꽉 막아서고 있는 듯한 그런 답답함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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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일자로,

해외 광물개발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애초 모바일 서비스 기획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한 이래로,

해외 광물개발이라는 매우 낯설고 생소한 일을 하기까지.

새로운 분야인만큼 익숙하지 않고,

그럼에도 기본 업무로서 해야할 '자료취합과 관리측면'에서부터

서서히 업무에 적응해가고 있다.


우선 3주가 넘어가는, 현업에서의 일에 대한 작은 소외를 기록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주된 내용은 '의사결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1. 회사 최고 의사결정자 파악하기

회사는 친구의 아버지가 최고의사결정권자인 회사이다.

주식이 있는 법인이고, 그 분은 아마도 최대주주인 것으로 판단된다.

(돌아오는 3월 주주총회가 있다고 하니, 주요 주주에 대해서도 파악이 가능할 것이라 본다.)

최대주주이자 최고의사결정권자에 의해 회사의 큰 방향

나아가 상대적으로 사소해보이는 의사결정에 있어서까지도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다.


2. 업무집중/지시

아직 업무와 관련 내용에 대해서 파악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그 업무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전제로 과제가 내려오곤 한다.

=>이런 경우, 회사 내에 업무와 관련된 교육과정이나 학습기간의 여유가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업무는 파악하겠지만, 교육과 학습기간을 두는 것은, 

그 '시간'을 줄여준다.


3. 업무수행자들의 자세

대부분 '수첩을 든 예스맨/관리자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체계적인 보고가 먼저일까 관리가 먼저일까?

닭과 달걀의 선후관계에 대한 논쟁처럼

조직 안에서 '체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체계 마련을 위한 노력/계획이 마련되어 있는지가 의문이다.

=>이런 경우, 내부의 인재를 키우고 싶다면, 권한을 위임할 필요가 있다.
내부 인력에 대한 신뢰가 전제가 되어야하겠지만,
언제까지 한 사람의 의사결정자를 위해 다수가 '정리/관리'에 국한될 수는 없다.
이럴 경우, 누구 한 사람의 부재에도 스스로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 조직으로,
더욱 효율적인 조직으로 성장해나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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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길을 운전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
낮에 보았던 전시회에서 '시간'을 지루해 하는 아이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나도 그 나이 때는 시간 그 자체를 지루해했었는데, 
지금은 새로운 걸 하지 않으면 시간이 아깝단 생각을 하곤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엔 더 큰 변화를 맞이했고, 
어느 덧 2달째가 되어가는데. 
내 삶의 또 다른 막, 또 다른 장으로 넘어가는 그 경계를 어떤 주제로, 
어떤 일로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마음이란게 몸이 떨어진 머나먼 공간보다,
털어내지 못한 용기의 벽에 더 크게 걸린다.
그렇게 보낸 사람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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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위해 요릴 아는 것과

누군가를 위해 요릴 사줄 아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어느 식당에 들어가 

요리를 시킬줄 아는 것과


함께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함께하고 나눠 먹을 있는 사이에


우리는 전자의 것을 마주할 활률이 높을 것이다.


내가 그리워 마지 하는 것은,

낮은 확률의 후자의 .

함께 '하는 '이다.


우리는 직접 하는 것에 비해

구매 것에 편의를 갖게 되면서,

과정을 만들어갈 추억과,

배울 수 있는 기회 모두를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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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인데도, 마치 늦가을의 냉기만큼만 차가운 날들이다.

오전이면 하늘이 맑은듯하다가도,

늦은 오후에는 을씨년스러운 회색빛이 가득해.


그래도 겨울이라고,

어깨가 드러나는 웃옷을 입고 자고 일어날 즈음이면,

새벽의 냉기가 목과 어깨 사이로 스며든다.

그러다 불연 밖에서 경운기나 오토바이 소리가 날 것만 같다.


마흔 초반 정도 되셨었겠지?

두툼한 이불 사이를 밀고들어오는 스산한 새벽 바람에 잠을 깰때의 아버지 나이가.

예닐곱살 즈음에 어린 나는

밤같던 그런 새벽에 이불맡에서 담배불을 붙이고,

얼마 안되서 논밭을 살피러 나서던 아버지를

코와 귀로 알아채곤 했다.


그 때는 몰랐던 것 같다.

그의 이른 기침(起枕)이 

짊어지고 있었을 가족과 삶의 무게.

요즘에서야, 그 무게를 생각하게 된다.

딱, 잠에서 깨던 그 시간 즈음의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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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물점과 철공소가 늘어선 안쪽에 자리 잡은 카페가 직장이다.


그가 카페에 처음 왔던 날은

겨울인데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오후였다.

그는 출입문 종소리가 잦아들기 전에 

문앞 우산 꽂이에, 봉우리 장식이 달린 파란 우산을 꼽았다.


그는 출입문 옆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다른 손님을 흘깃보고,

옆에는 먼저와서 대화를 나누는 명의 남자손님들 테이블 옆을 지나,

카운터 위에 걸어둔 메뉴판을 살피며 카페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섰다.


"여기 자릴 잡으려면, 기다려야 하나요?"

"아니요, 곧바로 주문하시고 차를 기다리시면 되요."


대부분의 자리가 있는 봤는지, 그는 자릴 물어왔다.

그렇게 곳에 궁금증과 호기심을 품은 앞으로

별관에서 내려온 아주머니가 새치기 하듯 서서 묻는다.


"혹시, 컵으로 주실 있어요? 조금 흔하지 않은 모양이라서"

카운터 옆의 디저트 캐비넷 앞으로 아주머니는,

" 쿠키는 뭐가 있어요?"

"초코쿠키, 아몬드 쿠키가 있구요..."

"초코쿠키 2개랑 아몬드 쿠키 1개도 같이 주세요."


아주머니가 그의 호기심을 끊는 사이에도 그는 가만히 카운터에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카페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라떼 주세요, 머그에 주세요. 그리고 혹시 여기 앉을 있나요?"

", 별관에 자리가 있구요, 거기에 화장실도 있어요."


카운터 위에 걸린 모니터에 보이는, 좁은 바깥 건너편 2층에 있는 별관 상황을 가르켰다.


"혹시 거기까지 가려면 테이크아웃 잔에 가져가야만 하나요?"

"아니요. 들고 가시면 되요."

"머그로 나온 그냥 들고 가면 된다는 거죠?"

""


그에게 주문 순서를 알릴 진동벨을 건넸다.


사이 출입문 옆에 대화를 나누던 손님이 나서고, 그는 테이블과 의자 위로 가방과 외투와 목도리를 풀어두었다. 그러고는 검은색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다가, 가방에서 패드 그리고 권을 꺼냈다.


패드를 펼치고, 패드 케이스에 있는 키보드로 무언가를 두드린다. 그러다 읽은 얼마 된듯한 작은 책을 펼쳐 읽는다. 책을 읽다가 다시 패드를 열어 무언가를 적는다.


출입문 옆의 시계는 오후 2 30분을 가르킨다.


"그럼, 밥먹고 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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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 30. 내가 다시 돌아왔을 , 그는 처음 자리잡은 테이블에서 책을 읽고 있다. 패드는 가방에 넣어었는지 테이블 위에 보이지 않는다. 자기 소리로 공간의 소음을 막으려듯 하얀 이어폰을 꼽고 있다.


', , , '


낡은 벽시계가 4시를 가르킨지 얼마 안됐을 즈음,

그가 머그를 카운터 앞에 내려놓는다.

들여다보고 있던 전화기를 내려두고 그를 마주한다.

그는 왼손에 들고 있던 지갑에서 천원짜리 지폐를 꺼내며,


"카푸치노 주세요."


천원짜리 지폐 4장을 건내고, 바싹 붙은 바지의 오른쪽 주머니에서 동전을 웅쿰 꺼내 백원짜리 동전을 손에 떨구듯이 건낸다. 마치 누군가와 스치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듯이.


"머그에 드릴까요?"

""

"차가 나오면 불러서 말씀 드릴께요"

""


그는 다시 테이블로 가서 앉는다. 제법 그의 뒷모습에 빨간색 니트가 그의 엉덩이 아래까지 덮고 있다.


"주문하신 카푸치노 나왔습니다."


그가 카운터를 바라본다. 그리고 걸어온다.

나는 카푸치노 위에 시나몬 파우더 통을 기울이며,


"카푸치노 위에 시나몬 가루 올려드릴까요?"

""

"트레이는 필요없으시죠?"

""


질문이 미쳐 끝나기 무섭게, 가로채듯 그가 대답한다. 그는 컵을 들고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그리고 다시, 책 읽기와 습작을 반복하고 있다.

카페 천장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그는 듣고 있을까? 이따금 열리는 출입문에 반응하는건지, 출입문가에 꽂혀 있는 자기 우산을 살피는지 가끔 출입문가를 바라보기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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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지금,

처음 코엑스몰을 찾았을 때는,

실내에 이만한 몰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현대적인 실내 몰(Mall)이였다.


요즘은 서울 내에도,

서울 근교에도 이런 몰이 많아서

강남에서도 주변부로 더 밀려버린 느낌이다.


그리고 리뉴얼.

이제는 안에서 길을 헤매기 일 수다.

전에는 다양한 익스테리어의 가게들이

곳곳에 섞여 있어,

어떤 가게와 갈림길이 이정표가 되었었는데.

말끔하게 연한 아이보리 색 실내로 리뉴얼 된 지금은

이정표로 삼을만한게 거의 없다.


이정표. 

나름의 기준점이 없으니 방황이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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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에 오면,

나는 사라진다.


헬멧과 마스크를 .

거친피부에,

금속들을 잘라내고 휘어내고 깎아내는 기기를 다루는

어떤 사람.


성이 김이라면, ‘김씨’.

이라면, ‘이씨’.

그나마 성이 불린다면 존중받는걸거다.

그저 이름이 불리는게 다반사다.


앞을 지키고 앉아 있는

안전감독.


그들은 소속이 명확한 회사원들이라는 이유로,

왠지 모를 우월감을 품은 눈으로

일하는 우릴 바라본다.


, 노동에도 계층이 있구나.

그게 버는 돈보다,

있는 기간의 안정성이

노동의 계층을 결정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는구나?!


헬멧과 마스크를 벗고,

그들과어떻게 것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면 어떨까?

문화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노동이 계층만을 만들어버린 사회에 살고 있다.

일상의 부분이 노동 현장에는 삶은 없고,

그렇게 계층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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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민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보다

어떻게 있을까? 가깝다.



시골에서 대학입시를 위해 서울로 올라온 친구들이 모였다.

명이 결혼을 한다고.

결혼에 대한 이야기, 각자 살아가는 이야기.


우리 이야기는,

회사를 떠나 자연인인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 인가에 대한 질문에 다달았다.

사실 질문은 이미 각자가 고민해오고 있었던 것이고.

질문이살아갈 것인가?’보다살아갈 있을까?’

우리 개개인의 사이즈보다

사회적 가능성의 영역이라는 점도 공감하게 됐다.


나에게 질문은, 취직이 급했던 때에도.

회사를 그만둘 결심을 때에도 했었던 질문이다.

대기업 모바일 서비스 기획자에서,

자유기획자, 스타트업 기획-마케팅 담당자

출판사 번역가를 지나 개인사업자까지

지난 8년의 삶을 관통하는 질문에 대한 고민의 답은?


역시

아직도 모르겠다.

식상한 말이지만, 죽기 전까지도 고민은 계속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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