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 목사보다 더

호전적인 투쟁을 주장했던

말콤 X의 연설입니다.



집 노예는 백인 주인 집의 지하실에서,

주인의 옆에서 집사 또는 다른 노예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집에 불이나면, 집의 불을 끄고,

주인이 제공하는 집(지하실)의 편안함에 도취되어

자유를 찾아 집을 떠나질 않죠.

반면,

들 노예는 백인 주인 집과 떨어진 들판,

천막이나 비를 피할 곳에서 삽니다.

주인의 매질을 받고, 가혹한 노동을 하고,

주인이 던져주는 창자같은 쓰레기 음식을 먹고 삽니다.

주인 집에 불이 나면 도망가죠.

언제든 자유를 찾아 집을 떠나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음악을 만들고,

그 것이 가스펠, 째즈, 리듬 앤 블루스로 발전합니다.


지금의 편안함에 도취되어

연명하는 삶. vs 자유를 찾아 기회를 엿보는 삶.


법과 제도에 무릎 꿇지 말고,

스스로의 자유를 위해 먼저 행동하라는 내용의 연설입니다.

우선은 자유인으로서의 입지를 갖어야한다는거죠.

그 다음 제도와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합의하면 됩니다.


우리는 자유인으로 살고 있습니까?


블로깅이라는걸 하기 시작한지는

2004년쯤?


계정만들고, 블로그를 생성해야하는 네이버 시절이였다.

(지금은, 계정 만들면 블로그도 자동 생성이지만.)

그 땐, 블로그와 여타 채널과의 연결에 대한 개념도
필요성도 낮을 때였고.


그러다 2008년에 지금의 티스토리로 이사를 왔는데.

벌써 9년차가 됐다.


그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대부분은

블로그는 내가 공부하던걸 아카이빙 하는게 주 용도.

그 중에서 사람들과 공유되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성하곤 한다.


2017년 초중반은

한창 바빠서 출장도 다니고, 지방 여기저길 다니던 때라

포스팅도 많이 줄었다.


그 와중에 시작하게 된건,

등산, 커피 정도?

등산

중력을 거스르는걸 이해 못하다가...

오르고 내르면서

누구의 간섭 없는 그 공간/과정이 좋았다.

커피

직접 원두를 갈고,

구미에 맞게, 우유나 두유를 고르고,

거품을 내거나 그냥....

그렇게 집에서 만드는 커피가 좋았다.


짧은 일상의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했는데,

그게 투정일 수도 있고...

가장 많이 글을 쓰게 됐다.


글은 줄었는데,

13.4만명이 더 왔다는건,

그 시기, 그 즈음의 관심사에

더 가까워졌다는 거겠지?


탈원전과 지도에 관심을 갖다보니,

지난 수능이 있기 2일 전에

포항 지진에 대한 포스팅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나보다.

우리나라 원전은 대도시와

주변 밀집거주지와 너무 가까워...

공장, 가정, 상업지구에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고민을 한다면

원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텐데.



이렇게 또 2017년을 포스팅 한 개로 요약해보는구나.

이런건 티스토리가 잘하는 것 같다.

이런걸 보여주니까, 내년엔 더 많이,

더 좋은 내용을 적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잖아.


그럼 안녕.


파워 하라스는,



지도교수가 지도학생에게,
상사가 하사(?) 직원에게,
체계상 권위와 결정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 상대방의 사람을 짓누른다는(괴롭히는)
의미의 일본식 표현이라고 한다.

최근 할리우드에서
저명한 남자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여러 배우들(심지어 남자들 중에도 피해자가 있다고)
성추행 또는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런 비뚤어진 권위주의에
한국도 예외일 수 있을까?
남성이 여성에게,
부모자 자식에게,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매사 '명령조'로 말을(실은 지시처럼) 하는 것.

가해자들 중 누구는(예를 들어 예비역 장군들이나)
은행 현금인출기를 사용할 줄 모른다거나,
자기도 사용하는 공동시설을 관리하지 않는다(못한다)거나,
마치, 상대방이 보살펴야할 성인 '기저귀' 같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런 걸 이해하고 깨뜨릴 수 있는가에 대한 이해는,
멀리서도 구할 필요도 없다.
'동물농장' 속 관계처럼,
부림과 부려짐의 권력은,
그가 가졌다는 걸을 그 아닌 주변인이 인정하는데서 비롯된 거고,
그 인정을 거둬들이기만 하면 되는거니까.
권력에 대한 인정을 거둬들이는 순간부터,
각자에게 그런 권능이 있었다는걸 체감하게 된다.
왕의 목을 '쳐'낸 18세기 말 프랑스 시민이나,
대통령을 끌어내린 21세기 초 한국의 일부 시민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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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

건물의 위치, 크기와는 의외로

4층의 그 공간은 여유로워 보였다.


엘리베이터에 내리자마자,

각각 3개의 엘리베이터가 마주하고 있는 그 복도에는,

'번호표'와 관련된 안내문이 올려진 테이블이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을 나서,

왼쪽으로 돌아

양쪽으로 훤히 열린 유리문 안으로 들어선다.

'상담을 위해 오신분들은 번호표를 뽑으세요.'

81번.


3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내 순번이다.


말총머리에

현실을 왜곡한 그림처럼

왼쪽 광대뼈가 오른쪽에 비해 아래로 더 돌출된 얼굴.

안경 안으로 보이는 작은 눈.

돌출된 상악.


의례적으로 신분증을 달라,

2시와 22일에 시간이 되느냐.

오늘 2시는 시간이 되지만

22일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에,

'무슨 일인데?'

짜증 섞인 그 반말에,

대답하고 싶지 않아, 

안된다로 짧게 받아칠 뿐이였다.


'개인 사업자로 등록이 되어 있다.'

'그럼 심사에서 걸려.'

'(끝까지 반말이네)'


그리고 서둘러 나왔다.

나를 보는 주변의 시선에 신경이 쓰인다기 보다,

발목을 잡는 친구와 함께 낸 '사업자'가 발목을 잡아,

이번 겨울에 세워둔 계획이

예상보다 크게 뒤틀린게 당황케 했다.


건물을 나와서야,

비로서 그 반말 섞인 상담원의 태도도 신경에 쓰였다.

하지만, 이내 그 반말은 그러려니...

그건 그 순간의 내 감정을 건드린 거고,

'사업자'를 어떻게 처리할 건가부터

차근차근 해결해야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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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마 안하는 거~'

+아무려면 어때

+치사하게

등등


'그' 것에 매겨진 시장에서의 갚어치만으로

'그' 것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정작

'그' 것이 거기에 있는 목적과

'그' 것이 거기에 없는 불편을 

간과한다.


내 것이 아니라면,

'그 얼마 안하는 거'라고 하기전에

거기, 그렇게 내버려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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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찾아오던 그 사람 기억의 간격이

차츰 길어지는 걸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아... 잊어가고 있구나!'



나에게로 왔던 사람이,

과거로 남고,

이젠 망각 속으로 간다.



사람을 피하게 된다.

아직 기억을 차지하고 있는지,

 잊혀져야만

다른 사람을

그 자리로 맞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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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층 아파트 창문 앞에 펼쳐져 있던 

너른 들판이 짙은 아침 안개로 뒤덮혀 있다.


안개 사이를 헤집고 움직이는 각진 짐칸의 윤곽과

그 것을 실은 트럭의 엔진 소리, 타이어 구르는 소리가

어릴적부터 갖었던 고요한 안개의 느낌을

분주한 아침의 이미지로 덮는 날이다.


응당 엊그저께 한로(寒露)가 지나갔으니,

그 의미처럼 늦가을에서 초겨울 무렵의 이슬이

증발하여 대지 위를 가득 매운 안개인가도 싶다.


안개 위로 햇빛이 비춰준다면

마치 은빛 바다가 일렁일만도 한데,

오늘은 안개가 너무 짙은 것인지,

안개 위로 구름이 빼곡한 것 때문인지

해마저 어디에 있는지 짚어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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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눈빛으로 안다.
그 눈이 향하는 것에 대해
눈가로 머금은 그 표정

그에 더해,
평소 행동까지 더하면,
그 사람의 진심이 보인다.
얼마나 진실한지,
얼마나 가식적인지.

안다는 것은,
지나온 기억을 반추하며 갖게된,
일종의 선입견에 가깝다.

어쩌면 그 눈빛보다 행동이
본능을 더 고착시켰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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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개성을 존중받고 단 한 번뿐인 삶을 즐긴다는'

YOLO(You Only Live Once)


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종의 트렌드인가보다.


저임금, 불안한 고용 그리고 주거.

젊은 세대들은 그 나이에 강요받는

연애와 결혼, 출산/육아보다 

자기 자신을 존중받는 삶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문득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 속의 수 많은 여행 YOLO, 취미 YOLO 들.


So what?

이란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한 번 사는 삶은 맞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즐기면서 살라고?

어떻게, 무엇을 즐겨야 하는데?

술? 파티? 맛집 찾아다니기?


'목표가 없는 꿈은 한 낱 꿈에 불과핟스,

목표가 없는 YOLO도 그저 '불금' 같은 무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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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뇌리를 스치는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Ready-made life)'.

기성품 인생.


산업화의 말미에서.
물리적인 능력, 찍어내듯 배운 지식으로
모두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런 메이드된 삶에 족쇄처럼 여기저기 끌려다니는
그런 일상에 파묻혀 살아갈게 아니라,
지레 겁을 집어먹게 될지라도,
낯설고 새로운 것과 마주할 용기라도 갖어보는건 어떨까?


그래서... 주말에 공간 투어를 다니기로 했음.


채만식의 근현대문학에서 주말에 놀거리로 이어가는
합리화라는 놈.


To Fromm from Kant.


'Ready-made' to 'Ready to m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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