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잔다르크와 뉴올리언즈의 재즈, 힙합 그리고 케이준 버거

2018. 11. 9. 15:47Tips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약간의 '언어학'과 역사, 음악
그리고 음식과도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출처 https://www.jeanne-darc.info/biography/

<잔 다르크 진격 삽화>

 

잔 다르크(Jeanne d'Arc)

오를레앙의 성처녀(La Pucelle d'Orléans)라 불리는

잔 다르크(영문 표기 Joan d'Arc)는

1412년 1월 6일에 태어나
1431년 5월 30일에 죽었습니다.

 

그녀는 15세기까지 이어진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에서 활약했습니다.
당시가 20살이 채 되지 않았네요.

결국 영국에 사로잡혀
종교재판 후에 마녀로 화형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잔 다르크는 사후 복권되어
프랑스의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오를레앙의 위치와 잔다르크의 진격로>

 

오를레앙이 프랑스로 남다.

잔이 살던 당시는 백년전쟁 막바지로,

프랑스에 매우 불리한 상태였습니다.

전쟁은,
프랑스 내의 영국 영토에 대한 갈등

당시 도팽 샤를 왕세자의 프랑스 왕위 계승에 대해

영국 헨리 5세와의 갈등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잔 다르크의 나이 13세인 1425년.

성 미카엘, 성녀 마르가리타, 성녀 카타리나의 모습과 함께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1428년에는 왕세자 샤를을 만나
오를레앙(Orléans)의 포위를 풀어낼 것을 지시받고,

1429년 5월 오를레앙을 해방시키게 됩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8%A4%EB%A5%BC%EB%A0%88%EC%95%99_%EA%B3%B5%EC%9E%91#/media/File:Orleans_orders_crown.svg

<오를레앙 공작의 문장>

 

오를레앙은?

오를레앙 공작(Duc d'Orléans)은

14세기까지 프랑스의 귀족 계급 가운데 중요했습니다.

혈통적으로도 왕실과 매우 밀접했고,

주로 현 국왕의 동생이 갖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만약 프랑스 국왕에게 적자 계승자가 없을 경우에는

오를레앙 공이 대신 왕위를 이어받았기도 했다는군요.

역사적으로도

15세기 루이 12세, 19세기 루이 필리프가

오를레앙 공작 신분으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뉴올리언즈의 위치>

 

뉴올리언즈(New Orleans)

프랑스식, '누벨 오를레앙, Nouvelle-Orléans의

영어식 발음인 뉴 올리언즈는,

미국 루이지애나주 남부의 미시시피 강 하구에서

170km 상류에 있는 도시입니다.

 

미국의 주요 항구 도시이자,

재즈가 탄생한 도시로 'Jazz의 고향'이죠.

이 도시에는 프랑스가 선물한

잔 다르크의 황금빛 동상이 있다고도 합니다.

 

스페인이 첫 식민지를 건설했다고 전해지며,

17세기 초, 프랑스 식민제국의 일부(뉴벨 프랑스)가 되었습니다

1718년, 프랑스 미시시피 회사에 의해 도시가 설립되고,

당시 루이 15세의 섭정이었던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2세의 이름을 따서
오를레앙이라 지어졌다.

 

 

<1960년 Miles Davis의 트럼팻 연주 from CNN>

 

재즈(Jazz), 뉴올리언즈에서 태어나다

20세기 초, 뉴올리언스에서 서양음악의 기술과 이론을 바탕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특유의 독특한 음악성이 가미된 대중음악 장르로

재즈가 등장합니다.

 

프랑스에 건설된 뉴올리언즈는

1803년 미국의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미국령이 되는데요.

프랑스가 미국으로 이 지역을 판매하면서

2가지 조건을 붙였다고 합니다.

 

-루이지애나에서 프랑스, 스페인을 조상으로 하는 흑인들은 백인과 같은 신분을 보장한다.

-백인 주인이 죽으면 흑인 첩은 노예에서 해방된다. 그리고 자녀는 엄마의 신분을 따른다.

 

이런 매각조건을 통해,

신분을 보장 받은 흑인 혼혈 크레올이 등장합니다.
신분을 보장받은 크레올들은

부를 축적하거나,
피아노, 바이올린과 같은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기도 했습니다.

 

미국 내, 어느 사회보다 자유로웠던

루이지애나의 크레올,
특히 흑인 크레올들은,

이런 환경을 통해 서양식 음악과,

심폐력이 좋은 신체적 특징 등으로

발성과 관악기 연주에도 능했는데요.

재즈는 아프리카계 흑인들 특유의 리듬감과

서양의 클래식, 클래식 악기 그리고 크레올과 만나

태동하게 됩니다.

 

 

음악의 탄생

재즈는
현대 대중음악 장르들의

주요 모태가 됩니다.

관련된 주요 장르를 간단히 정리하면,

 

펑크는

1960년대 재즈와 재즈에서 파생된 리듬앤 블루스가 혼합된 장르입니다.

 

리듬앤 블루스는,

R&B로 줄여 쓰이기도 하며,

1940년대 말~1950년대 초에

블루스가 스윙과 같은 댄스풍 재즈와 섞여 태어난

흑인음악 장르입니다.

 

로큰롤은

1940년대 말~1950년대 후반에 태동한,

블루스, 컨트리, 재즈가 혼합된 장르입니다.

 

힙합은,

1970년대 미국 뉴욕의 브롱스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춤과 대중음악에서 파생된 거리문화입니다.

초창기 힙합은,
팝, 펑크, 래게, 소울, 재즈 등 대중음악에서 추출한 일부를

즉흥적으로 춤의 배경으로 사용하다가,

분위기에 맞춰 즉흥적인 후렴구나 미사여구들이 붙으면서

이 역할을 맏은 MC, 랩퍼가 등장하게 됩니다.

 

 

https://www.foodnetwork.com/recipes/food-network-kitchen/jambalaya-3362212

<케이준 스타일 음식, 잠발라야(Jambalaya)>

 

케이준 버거, 파파이스

한국에 진출해있는 패스트 푸드 중에,

저는 파파이스(Popeyes)를 좋아합니다.

1972년 뉴 올리언즈에서 시작한 '케이준(Cajun)' 스타일인데요.


케이준은,

1620년부터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아카디아(Acadia)지역에 정착한 프랑스인들이 

1755년 영국인들에 의해
미국 루이지애나 지방으로 강제 이주하면서

'아카디아인이란 뜻의 Acadian(아카댕)이 변형되어

지금의 Cajun이란 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캐이준은 루이지애나 근방에 사는

프랑스계 미국인들의 문화 방식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요리 방식 또한,

당시 구하기 어려운 버터 대신 돼지기름을 사용하고,

저급 재료를 맛잇게 먹기 위해

향신료를 다량 사용하여 강한 맛을 내는 요리를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국 남부에서 구하기 쉬운, 마늘, 양파, 칠리, 후추, 겨자 등의

양념을 듬뿍 사용하는게 특징이라고 합니다.

(물론 미국 남부는 동시대의 유럽보다 식재료, 향신료 수급이 수월한 곳이였구요.)

 

 

마치며

잔 다르크에서 시작해서

케이준 스타일 음식에 이르기까지...

 

"만약 잔 다르크가 오를레앙을 구원하지 못했다면,

재즈도, 힙합도 존재하지 않았을 수 있다."

 

라는 이어지는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어와 같은

라틴어 계열 이름에서 de는

영어의 'of', 'from'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요.

 

Joan d'Arc의 이름에서처럼

프랑스 알자스-로렌지방의 동레미에서 태어난

잔 다르크의 이름에서,
그녀가 동레미 지역의 'Arc'라는 단어와 관련된

지명 출신이라는 추정과

그녀가 오를레앙(Orléans)을 영국으로부터 프랑스로부터 구한 이야기.


그 이후, 프랑스의 북아메리카 식민지, 뉴 올리언즈의 건설.

뉴올리언즈에서 재즈의 태동과 음악에 준 영향.

뉴올리언즈에 정착한 프랑스계 아카디아 사람들의 문화에 이르기까지.

 

생각과 말로는 약 10분이면 쉽게 정리될 줄 알았는데,

관련 자료를 찾아가며 요약해서 적으니

시간이 많이 들였네요.


잔 다르크가 15세기 오를레앙을 지켜내지 못했다면,
프랑스의 오를레앙도,
16세기 이후 프랑스의 북아메리카 식민지 확장에도,

뉴올리언즈와 상대적으로 자유를 보장 받았던 아프리카계 크레올도,

그들이 만든 재즈도,

뉴올리언즈의 케이준 스타일 음식도

지금과 사뭇 달랐을 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어요.

 

기회가 된다면,

이 내용을 유튜브 클립으로도 만들어보면 재밌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