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나의 가장 나종 지닌 것 - 박완서
명애의 닥달에 못이겨 찾아간 강북 서쪽 구석에 있는,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는 여고 동창생의 집. 꼬부라진 길 사이를 어렵게 찾아가면서, 아직도 이런 동네가 서울에 있었나 싶었다. 그 친구의 아들은 우리 창석이처럼 죽은것도 아니요, 뺑소니에 치여 척추를 다쳤다 싶다. 하반신 마비에 치매까지 왔다지만, 누워있는 기골을 봐선 장대한 사내아이였으리라. 푸석푸석한 살찐 몸뚱이에 흐리멍텅한 눈. 간간히 입에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신음소리. 아들을 돌보는 동창애는 우리와 동기이면서도 늙은노파가 다 되어버렸다. 우리가 마치 자기 아들과 자기의 처지를 동정하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본다고 느꼈는지, 아니면 그런 눈 빛에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던 것인지, 우리가 왔다는 건 아랑곳 하지 않고, 그 큰 아들을 이불에 싸서 ..
2008. 12. 12. 1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