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유러피안 드림(The European Dream), 경쟁에서 협력의 시대로

2009. 6. 1. 14:47Book Reviews

How Europe's vison of the future is quietly eclipsing the American dream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에 이은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책입니다.
(사실 노동의 종말은 기억에도 가물가물한데...)
 
아마도 이 책은 유러피안 드림이면서도
Beyond American Dream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광활한 대륙에서 물질문명을 꽃피운 미국적 삶에서,
밀집된 공간의 다양한 문화와 삶의 방식이 살아 있는 유럽의 삶으로...
 
읽어보고 리뷰 이어집니다.


-2009. 5. 29
故 노무현 대통령님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읽으신 책이 이 책이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스스로도 이런 책 하나 써봤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는데,
유럽식 사회복지국가에 대한 꿈은
참여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했던
유시민씨의 '대한민국 개조론'이란 책에서도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개조'라는 말이 조금은 어감으로는 좋지 않지만,
사실 보건복지를 통해 시민의 삶 살피겠다는 것이고,
나아가 국내 내수경제 활성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죠.
노무현과 유시민, 같은 꿈을 꾸었던 사람들입니다.
 
그 뜻을 헤아려 본다면,
빈소에서의 유시민님의 그 모습이 과장됨이 아님을 알 수 있겠죠.
어찌되었건... 책은 아직 1/3정도 읽었습니다.
생각보다 분량이 많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사상적 바탕과 변화를 정리하는데에만 절반을 할애된 것 같습니다.
계속 읽어보겠습니다.
그 '유러피안 드림' 속에 '노무현의 꿈'도 있는지 조금 더 살피겠습니다.

죽음과 관련된 많은 의문과 별개로,
생을 마감하신 분에 대한 예의를 먼저 차리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한 세상 잘 놀다 가셨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돌아가셨으니,
그것도 복인 것 같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뜻은 남은 이들이 나누어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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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은 한 국가의 경제 복지 측저에 GDP를 기준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떤 맹점이 있는지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GNP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GDP와 같은 개념으로 간주된다. 둘 다 한 나라의 경제 활동 결과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경제지표다.)

GNP에는 대기 오염과 담배 광고, 고속도로에서 사상자를 치우는 앰뷸런스가 포함된다. 또 일반 가정에 침범하거나 교도소를 탈출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특수 자물쇠를 설치하는 것도 포함된다. GNP는 아메리카 삼나무 숲의 파괴와 수피리어 호의 죽음을 포함한다. 네이팜탄, 미사일, 핵탄두를 생산하면 GNP는 늘어난다. 

그러나 가족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은 포함되지 않는다. GNP는공장의 청결성이나 거리의 안전에는 전혀 무관심하다. 미국 시의 아름다움이나 건전한 결혼관, 공론의 수준, 관리들의 청렴성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말해 GNP는 다른 모든 것을 포함하지만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제외된다.

산술적인 지표가 그 사회의 산술적인 수준을 말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꼭 만능은 아니다. 껌이 길거리에 버려질 잠재적 가능성 때문에,
껌조차 마음대로 씹을 수 없는(사실 난 껌을 좋아하지 않지만, 껌을 씹을 자유는 있다고 생각한다.)
싱가포르와 같은 통제국가에 산다고 생각해보라. 담배를 물었기 때문에 구속될 수도 있다.
음식을 나누기 위해 옆집을 찾는 것은 미국에서는 꿈꾸기 힘들다.(총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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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리프킨이라는 이름은 다분히 게르만 계열의 뉘앙스다. 아마도 독일계 이민자의 후손일거란 생각을 해본다. 그의 아머지는 1908년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출생했고, 그의 어머니는 1911년 미국과 멕시코로 양분된 텍사스주의 엘파소에서 태어났다. 저자는 그의 부모님이 신개척지의 느낌이 살아 있는 마지막 세대라고 말한다.
그 중 운명과 숙명에 대한 그의 어머니의 말을 간단히 적고자 한다.
..
어머니는 모든 사람이 운명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무엇인가를 기여하기 위해 태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운명을 단숙한 숙명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기회로 생각했다.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실천했는지 여부는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얼마나 철저히 믿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무슨 상황이든 자신의 삶과 동시대의 많은 미국인들의 삶을 인도한 원칙을 나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제러미, 미국에서는 말이야 어떤 것이든 네가 택하면 할 수 있고 네가 원하는 어떤 사람도 될 수 있어. 그걸 정말 간절히 원한다면 말이야."
어머니에게는 개인의 의지력이 미래의 모든 가능성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 주는 원동력이었다.
"너 자신을 믿으면 거대한 산도 옮길 수 있어." (중략)
미국의 개척 시대가 아직도 생생했던 어머니의 세대에게는 이 모든 것이 당연한 상식이었다. 약 50년 뒤 그런 원칙이 집단 기억에서 희미해지기 시작하자 교육자, 정신학자, 그리고 부모들은 반드시 인위적이지 않다고 해도 "자긍심 고취" 세미나와 교육 등 더욱 조직화된 방법으로 그 원칙들을 재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로 고안된 상황에서는 그런 훈계가 크게 공감을 얻지 못했다. 역사적인 맥락이나 별다른 의무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자긍심'은 종종 특정 목표 없이 그냥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것"을 의미하게 됐다.                                                                                         (p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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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네트워크 모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전작 '소유의 종말'에서도 그러난 개념이다.
..
네트워크 모델에서는 자유가 반대로 정의된다. 자유는 재산 소유보다는 네트워크에 소속됨으로써 확보된다. 소속되기 위해서는 접근권이 있어야 한다. 접근권을 가지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격리된 관게보다는 공유된 관게에서 자유가 확보되는 것이다. 

재산을 모으고 자율을 추구하는 데 일생을 바친 사람과 평생 서로간의 관계와 친밀함을 추구한 사람이 임종을 앞두었을 때는 비교해 보자. 어느 쪽이 자기 존재의 잠재력을 충분히 경험함으로써 가장 많은 자유를 누렸다고 말할 수 있는가?
 네트워크 시스템은 비즈니스 모델을 초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네트워크 시스템의 개념은 우리가 시장 경제 체제에서 합당한 행동과 행복한 삶을 규정하는 개념과 크게 차이가 난다. 시장은 속상성 불신을 기초로 하지만 네트워크는 신뢰를 기본으로 한다. 시장은 사리를 추구하지만 네트워크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 시장은 서로간의 거리를 두는 거래를 하지만 네트워크의 거래는 친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시장은 경쟁의 장이지만 네트워크는 협력의 장이다.
(중략)
봉건 시대에 봉토를 기반으로 하는 소유 의무에서 시장 경재의 재산 교환으로 바귄 '거대한 변환'은 인적 교류의 성겨고가 목표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서 분수령을 이루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장에서의 재산 교환에서 네트워크에서의 접근 관계로 바귀고 있는 지금의 전환도 인간 활동의 성격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크게 바꿔 놓고 있다.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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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정부들도 20세기 대부분 테일러식의 수직적 관료주의 통치 모델에 의존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일반 국민 뿐만 아니라 정부의 대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무원들의 아이디어, 감정, 전문 기술도 대부분 무시당했다. 공무원들이 군인처럼 업무를 수행하고 국민들이 수동적인 서비스 수혜자로 취급받는 조직이 효율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런 합리적인 지시-통제 시스템은 그 시대의 기게적 사고방식을 반영했다. 기계와 인간 모두 다 외부 주도자의 지시에 따라 단순 작업을 반복하도록 만들어진 수동적 도구로 간주되었다. 이런 모델은 그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이나 그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이 '인풋'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전혀 또는 거의 주지 않는다. 지시 계통 위쪽으로 기여할 가치가 거의 없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드백 회로를 갖춘 '인텔리전트' 정보 및 통신 기기가 개발됨으로써 기술의 속성이 변하면서 통치 체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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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가 계속 변하는 조건과 환경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 외적 성격이 주변의 변하는 활동 패턴에 적응해 게속 새롭게 재조정되고 있기 대문이다. 카멜레온처럼 스스로 게속 변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EU의 장점이다.
EU는 민족국가와 같은 운명의 관리자가 아니라 순간적인 분쟁과 경합하는 명분의 조정자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런 새 시대에는 민족국가 시대에 국민들의 충성심을 유발하던 '거대 담론(meta-narrative: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거창한 목적론적인 이야기)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계층의 시각과 목표를 반영하는 수많은 작은 담론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그에 따라 서로 다른 행위자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고, 각각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공동체로 움직일 수 있도록 대화를 유도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EU의 권한이자 의무가 되었다. EU헌법의 비공식 별명이 "다양성 속의 조화(Unity in Diversity)"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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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EU의 네트워크 속성은 생태계와 지식 공유와 관련된 부분에까지 확장된다.
..
자연 생태계가 통합된 일체로서 관리될 필요가 있으며, 임의적으로 정한 정치적 경계로 나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것은 시스템적 사고방식과 분석법이 과학 분야와 공공정책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증거다. 생태계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네트워크를 재결합해야만 지구의 자연 환경은 의미 있는 방향으로 보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종, 특히 대형 포식동물의 경우, 해당 국가 정부들이 공동으로 노력해야만 그들의 생존을 보장하고 개체 수를 유지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과학 연구 분야에서도 지식과 기술이 해당 국가들 사이에서 공유되어야만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초국경 공원들은 국가, 지역, 학계 시민사회 단체, 민간 부문을 포함해 모든 관련 당사자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관리되어야 한다.
(p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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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올바로 이해하고 찬양하는 사람은 삶을 확대할 수 있다.
20세기 초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에서 하나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어떻게 죽음과 화해하고 삶을 선택할 수 있을가? 죽음을 막아보려는 의도로 자연(인간성 포함)을 지배하고 제어하고 정복하겠다는 생각을 버림으로써, 다시 말해 죽은 본능을 떨쳐 버리겠다고 자의식적인 결정을 내림으로써 가능하다. 죽음 본능을 발휘하는 대신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자연과 재결합하겠다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아에서 다른 사람으로 관계를 확대하고 지구를 살아 있는 유기체로 만드는 다양한 관계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중략)
자유 의지로서 자연과 재결합하여 자연의 일부가 됨으로써 우리는 생물권과 '바다 같은 일체'를 형성하는 동시에 독특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p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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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는 낙관론이 필요하다. 자신의 희망이 성취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희망과 낙관론이 넘치지만 유럽인들은 전체적으로 볼 때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그들은 EU라는 새로운 연합체에 대해서는 '신중한' 낙관론을 편다. 그리고 여론 조사 결과도 젊은 세대 사이에는 낙관론이 우세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기대할 수 있고, 기대해야 할 전부인지 모른다. '미국의 정신'에서 가장 큰 특징을 이루는 검증되지 않은 낙관론이 언제나 이롭게 작용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파급 효과가 있는 위협이 점점 많아지는 세계에서는 리스크에 대한 현실적 평가를 감안해 지나친 열의를 갖지 않는 것이 더 적합할지 모른다. 그러나 유럽인들의 마음에는 비관주의가 깊이 뿌리 박고 있다. 유럽인들이 겪은 수많은 정치 및 사회 실험의 실패와 오랜 역사에 걸친 유혈 참상을 감안하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실패는 낙담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실패는 우리를 더욱 강하고, 유연하며, 현명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유럽인드링 냉소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미국인들이 순진한 낙관주의를 극복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매혹적으로 보이는 꿈이라도 비관주의와 냉소주의가 팽배한 분위기에서는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p496)


미국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이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는 꿈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새로운 유러피안 드림은
삶을 추구할 가치가 있게 해 주는 꿈이다.

살아갈 가치가 있게 해주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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