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의 지도

2011. 9. 2. 14:13Book Reviews

 
생각의지도
카테고리 인문 > 심리학
지은이 리처드 니스벳 (김영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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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긍호 (서강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동일한 제품을 선전할 때도 우리나라 광고들은 주로 집단의 선호를 자극하거나 집단이 받게 될 혜택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지만(“당신 가족의 건강을 지켜 드립니다”), 미국의 광고들은 주로 개인의 선호를 자극하거나 제품 구입으로 인한 개인의 혜택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당신을 더욱 활력있게 해 드립니다”).

 자동차 광고의 경우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차가 달리고 있는 광경이 위주가 되지만(이때 차는 자연 풍광 속에 묻혀 아주 작게 보일 뿐만 아니라, 전면에 부각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차의 내부의 안락함, 차의 견고함이나 안정성 등 차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크게 부각시킨다. 일본의 닛산 자동차 회사가 「인피니티」라는 고급 세단을 미국에서 광고할 때 일본에서 하듯이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계속 보여주고 맨 마지막에 가서야 「인피니티」라는 이름을 내 보였더니, 아이러니컬하게도 차는 팔리지 않고, 대신 나무나 바위의 판매고가 급증했다는 웃지못할 일화가 있다.

 어떤 회사의 직원이 15년 동안이나 회사를 위해 아주 많은 공헌을 해 왔으나, 지난 1년 동안의 실적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고 앞으로도 더 나아질 가망이 희박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의 회사원들은 대부분 “그가 과거에 회사에 공헌한바나 그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현재의 업무수행 능력만을 고려하여 그를 해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회사원들은 대부분 “그간의 공헌을 고려하여 회사가 그의 인생에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므로 해고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경험하는 이러한 동·서양 사람들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피상적인 차이에 불과할 뿐인가? 아니면 세상을 보는 눈과 사고 양식의 근본적인 차이 때문인가? 이러한 차이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앞으로 더 벌어질 것인가? 아니면 사라지거나 좁혀질 것인가?

 미국 미시간대학교 심리학교수인 리챠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는 많은 실증적 증거를 토대로 이러한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는 책이다.

 

보편성 추구의 허구성에 대한 인식

 

 전통적인 심리학은 인간의 심성과 행동을 설명하는 보편적인 원리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해왔다. 이러한 믿음 아래, 서구 특히 미국 심리학에서 다루는 연구 문제가 곧 보편적인 인간 심리와 행동 과정을 대변하는 것이어서, 서구심리학은 곧 보편심리학이라는 등식으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그리하여 서구심리학에서 다루는 문제나 개념, 방법 및 이론화가 다른 문화권에도 예외없이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이를 타 문화에도 그대로 가져다가 그들의 심성과 행동을 서구의 개념과 이론으로 설명하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문화 간의 차이는 있다고 하더라도 아주 피상적인 것일 뿐, 근본적인 심리과정이나 행동과정의 차이는 아니라고 보았다. 이를테면 우리가 ‘어머니'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미국인은 'mother'나 'father'라고 부르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의 원인도 서구 이외의 사람들이 근대화와 관련된 경험이 부족하거나(경험 차이 가설) 또는 인지 발달이 지체되어 추상적 사고 능력이 부족하기(인지능력 차이 가설) 때문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니스벳 역시 15∼16년 전까지만 해도 보편론 진영의 대표적인 학자였다. 그는 1980년에 스탠포드대학 심리학과의 리 로스와 함께 출간한 『인간의 추론: 사회판단의 전략과 결함』에서 인간의 사고과정은 보편적이어서, 사회판단 과정에서 동원하는 전략과 이때 나타나는 오류에 문화차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80년대부터 문화가 인간 심성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문화심리학자들에 의해 제반 심성과 행동의 문화간 차이 및 서구와 다른 문화권 사람들의 고유한 심성과 행동에 관한 연구들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보편성 가정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즉, 기존의 서구심리학에서 자명하고도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많은 원리들이 실상은 서구의 문화특수적인 것일 뿐, 서구 이외의 타 문화권 특히 동양문화권에도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하여 문화간의 차이를 조감하는 새로운 이론적 조망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도 서로 다른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 오랜 기간의 문화체험을 통해 그들의 사고양식과 과정에 근본적인 차이가 유발된다는 통찰을 얻게 되었다. 그로부터 그는 펑카이펭, 지리준(중국인), 최인철(한국인), 다키오 마수다(일본인), 아라 노렌자얀(아랍인) 등 동양권 제자들과 함께, 서유럽 및 북미(특히 미국과 캐나다)의 서양인들과 아시아(특히 중국·한국·일본)의 동양인들의 사고양식과 사고과정의 차이에 관한 실증적 연구와 그 차이의 근원에 관한 이론화 작업에 몰두하게 되었고, 이러한 연구의 결실이 이 책 『생각의 지도』이다.

 

동·서양인의 사고의 차이들

 

 이 책에서 니스벳은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를 동·서양 사고의 전형적인 예로 들면서, 고대 중국에서는 사람들 및 사물들 간의 관계를 중시하여, 전체 맥락 속에서 통합과 조화를 지향하는 사고양식을 보이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개인의 자율성과 개별적인 사물의 본질적 속성을 중시하여 논리적 분석과 양자택일식의 선택을 지향하는 사고양식을 보이고 있고 이러한 차이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제1장). 그 결과, 동·서양인은 서로 다른 자기개념을 지니는데, 동양인은 타인과의 관계와 이러한 관계 속의 역할에 의해 상호의존적으로 자기를 규정하여 인간관계를 중시하는데 비해, 서양인은 자기와 타인을 독특한 특성을 보유한 독립적인 개체로 인식하여 개인적 특성과 자율성을 중시한다(제2장).

 세상사를 인식하는 양식에서도 이러한 동·서양의 차이가 드러난다. 동양인은 전체 맥락을 중시하여 초점 자극뿐만 아니라 배경 자극도 잘 지각하고 기억하지만, 서양인은 초점 자극은 잘 기억하나 그것이 놓여 있는 맥락이나 배경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제3장). 따라서 어떤 사건의 원인을 분석할 때도 동양인들은 상황적 요인에 초점을 맞추어 전체 맥락을 중시하지만, 서양인은 행위자의 내적 속성에 초점을 맞출 뿐 상황 맥락은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제4장).

 또한 동양인은 사물들을 분류할 때도 그들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지만, 서양인은 사물들의 기본 속성을 추론하여 이들을 범주로 묶어 분류한다. 즉, 서양인이 범주를 중시하는데 비해, 동양인은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아동들의 언어 습득 과정에도 그대로 나타나, 서양의 아이들은 사물들의 본질적인 공통 특성에의 명명(命名)인 명사를 동사보다 먼저 습득하지만, 동양의 아이들은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동사를 먼저 습득한다(제5장). 그 결과, 서양인은 범주화에 기초한 논리적·양자택일적 사고에 뛰어난 반면, 동양인은 경험에 기초한 통합적·변증법적 사고에 능하다(제6장).

 

동·서양 사고양식 차이의 근원과 전망

 

이러한 차이들은 동·서양 사고양식과 자기개념의 전반적 차이를 제시한 1장과 2장의 내용을 제외하고는, 모두(제3장∼제6장) 니스벳과 그 제자들의 실증적 연구에서 밝혀진 것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제7장)

 니스벳은 서양인과 동양인의 세계와 자기 인식 양식의 차이는 고대 그리스와 중국의 생태적 조건과 사회체제 및 사회화 관습의 차이에서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는 높은 산으로 막힌 좁은 해안가에서 중앙집권화되지 못한 도시국가가 발달되어, 도시간의 이주와 무역이 활발하였으며, 따라서 서로 다른 생각과 관습을 지닌 사람들을 자주 접하게 됨으로써 시장과 정치 집회에서의 대립과 논쟁이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에 비해, 고대 중국은 넓고 비옥한 평원에서 중앙집권화되고 위계화된 사회가 형성되어, 한 지역에 몇 세대 동안 정착하여 공동 작업을 필수로 하는 농경에 종사했으므로, 이웃과의 협동과 조화의 추구가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리하여 그리스인들은 나와 나 아닌 것, 인간과 자연, 하나의 사물과 다른 사물을 엄격히 구별하여 범주화하고, 각각의 일관적이고 불변적인 본질(essence)을 추상화하여, 그들을 지배하는 법칙을 찾아내려 노력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들에게는 맥락과 분리된 독립적인 대상이 주의의 초점으로 부각되어, 이러한 분리된 대상의 불변적·안정적 속성을 인식하기 위해 주력하게 되었으며, 결국 범주화, 논리 규칙에 따른 갈등 해결 및 분석적 사고의 양식이 발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중국인들은 각 개체로서는 존재 의미가 없고, 모든 것은 상호연관적인 맥락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했으므로, 항상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상호연관된 역할과 의무 등의 규범을 파악하여, 공동생활의 조화와 질서를 이루려 노력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들에게는 분리되고 고립된 대상이 아니라 그들이 놓여 있는 전체 장(場, field)이 주의의 초점으로 부각되어, 이러한 맥락 속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가소성을 파악하여 통일성을 이루어 내기 위해 주력하게 되었으며, 결국 관계의 유사성과 중도(中道, Middle Way)의 인식, 변증법에 의한 갈등의 해결 및 통합적 사고의 양식이 발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니스벳에 의하면 이러한 배경에서 지속적으로 고대 그리스철학의 영향을 받아온 서양인들은 사회는 상호 분리되고 독립적인 개인들을 기본 단위로 하여 구성되는 복수적인 집합에 불과하다고 보아, 집단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의 경향을 띠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회의 이해는 결국 그 구성요소로서의 개인의 이해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보게 되고, 개인의 안정적이고 불변적인 독특한 내적 속성이 개인의 행위와 사회 운용의 원천이라는 개인중심적 인간관을 가지게 되었으며, 스스로를 타인과 분리되고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독립적인 자기관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누적적으로 고대 중국철학의 영향을 받은 동양인들은 상호연관된 사람들 사이의 관계 또는 그러한 관계의 원형인 가족과 같은 일차집단을 기본단위로 하여 구성되는 사회는 그 자체가 하나의 유기체라고 보아, 개인보다 그들이 놓여 있는 장으로서의 집단을 중시하는 집단주의의 경향을 띠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러한 관계 속에서의 각자의 역할과 의무 및 집단규범이 개인의 행위와 사회 운용의 원천이라는 관계중심적 인간관을 가지게 되었으며, 스스로를 제반 관계의 연쇄망 속에서 타인들과 연계되어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상호의존적 자기관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고대 그리스와 중국의 생태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사회체제와 사회화 관습의 차이가 주의의 초점을 다르게 하고, 결과적으로 세상사와 인간 및 자기를 보는 입장의 차이를 유발하여, 결과적으로 사고양식과 과정의 앞에서와 같은 제반 차이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 니스벳의 주장이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차이들은 실험실 장면에서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드러나고 있다(제8장). 그렇다면, 세계화를 지향하고 있는 현재의 추세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사고양식의 문화차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필로그)

 

 혹자는 세계화의 진행에 따라 동양적 특징은 소멸하고 모두가 서구화될 것이라 보기도 하고, 또 혹자는 동·서양의 차이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 보기도 한다. 그러나 니스벳은 단순히 동양이 서구화되거나 양자의 차이가 극단화하여 대립하게 되지 않고, 서양적인 것과 동양적인 것이 서로 결합하여 수렴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각각의 사고양식의 약점은 상대방의 장점에 의해 보완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수렴을 통해 서로의 발전이 촉진됨은 물론, 동·서간의 상호 이해의 폭도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니스벳은 보는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지금까지 여러번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동·서의 사고양식의 차이를 어떻게 이렇게 간명하고 알기 쉽게 정리할 수 있을까 하고 감탄하게 된다. 이 책은심리학도 뿐만 아니라 국제간의 비즈니스에 종사하거나 동·서의 문화차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의 필독서가 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책으로, 감히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박성국 (연세대 경영학과)

 

 나도 읽어봤다. 비록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적인 문화적 잣대로 나눈 것에 대해 다소 무리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오히려 일본 중국보다 대만 이탈리아와 유사한 문화적 성향을 갖는 한국의 가족주의를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동서양의 차이를 규명하기 위한 일련의 심리학적 차이와 그 근거로 들고 있는 사회통계적 실험은 차이를 규명하기 위한 보조의 차원. 결과에 맞는 근거를 위한 실험은 아니었는지. 독자의 객관적 판단 능력을 요한다.

 하지만 동서양이라는 거시문화적 관점에서 비교적 통계적 자료를 바탕으로 그 차이를 도출해 내고 있다는 데에 방법론적인 합리성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