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피엔스의 미래

2018. 11. 3. 16:29Book Reviews

멍크 디베이트?

멍크 디베이트는
캐나다 자원개발자 피터 멍크가 세운
오리아 재단이 2008년부터 열어온 지적 경연입니다.

당대에 가장 주목받는 국제 현안을 두고,
연 2회 국제적인 석학들, 지식인들이 벌이는 토론입니다.



책 <사피엔스의 미래>는,
지난 2015년 11월에,
'인류의 미래는 더 나아질 것인가?'라는
멍크 디베이트의 토론을 정리한 책입니다.

 

 

책의 구성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 멍크 디베이트

4명의 패널이 찬반을 나눠 주제에 대해 토론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장. 토론 전 인터뷰

사회자 '러디어드 그리피드'와 4명의 패널이
토론 전 인터뷰를 진행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3장. 전문가 논평

'앨리 와인'이 토론 안에서

4명의 패널의 주장을 논평했습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멍크 디베이트의 주제가

다소 철학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토론 주제와 찬반 입장을 구체화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철학에 레벨을 둔다는게 아이러니 하지만,

주제에 대해, 독자의 구체적인 입장을 두고 읽고 싶다면,

3장, 2장, 1장 순서로 읽는걸 추천합니다.

토론자와 입장


낙관 : 스티븐 핑거, 매트 리들리

부정 : 알랭드 보통, 말콤 브래드웰

 

스티븐 핑거

1954년 생, 캐나다인

인지과학자, 심리학자, 언어학자

 

매트 리들리

1958년 생, 영국인

저널리스트, 사업가, 대중과학 저술가

영국의 지명직 상원의원

 

알랭드 보통

1969년 생, 스위스인

작가, 철학자

 

말콤 브래드웰

1963년 생, 영국인

저널리스트, 기자

 

 

입장별 근거

낙관측,

인류의 물질적인 삶의 척도(수명, 질병, 빈곤, 전쟁, 기아 등)이 개선되었다는
통계적 근거를 바탕으로
인류의 불평등 지수가 개선중이다라는 주장.

과학, 기술 등에 의해 진보와 개선의 경향은 지속될 것이라다라는 입장.

이를 통해 더 쉽게 성취할 수 있는 환경이 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부정측,

물질적 충족만이 '더 나은 미래' 행복, 만족이라는 감정, 결핍을 충족시켜주지 않는다라는 주장.

기술의 진보 이면에는 원자력과 같이
더 쉽게, 인류의 위기와 절멸을 야기하는 위협들이 상존한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기후 변화와 같이, 과학과 기술이 대처하기 어려운 위기도 있다는 주장입니다.

 

특히,

알랭드 보통이 미래에 대해 낙관하지 않는 근거로 제기하는 것은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죽음과 질병을 영원히 극복할 수 없다는 점.

-편의를 제공하는 기술 덕에 일상의 불편 요소가 늘었다는 점.

-(개선된 상태를 보여주는) 통계 만으로는 개인의 불행을 척도화 할 수 없기 때문에,

 수치적 개선(통계적 만능)만으로 가치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말콤 글래드웰 또한

-기술로도 극복하지 못하는 위기(규모가 커진 기후 변화, 핵확산)만으로도

 충분히 '인류 절멸' 수준이다라는 점.

-긴밀해지는 연결성으로 '전염성 있는 위기'에 취약해졌다.

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이에 낙관측은

-낙관주의의 기반에는 현재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며,
그럼에도 개선과 진보를 이루려는 입장이라는 점.

-어느 시대건 그 시대의 암면을 지적하는 관점이 있었고,
그럼에도 개선과 진보를 이뤄냈다는 점.

을 들고 있습니다.

 

결과

토론전 91%의 방청객들은

토론에 따라 의견을 바꿀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토론 전 낙관은 71%, 부정은 29%였고,

토론 후 낙관은 73%, 부정은 27%로

낙관적 전망이 더 우세해졌습니다.

 

감상

역사를 통틀어 기술과 과학 이뤄놓은 진보의 결과를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이 목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소 철학적인 토론 주제와 별개로,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를 꺾기란
쉽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근대 이후의

합리주의의 기본 가정은,

비평, 비판을 통해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입장 조차, 낙관을 전제하지 않았나 싶네요.

 

책의 멍크 디베이트는 다소 싱겁기는 합니다.

산업화 이후 과학과 기술이 개선해놓은 결과가
통계라는 믿을만한 근거가 있었고,

이를 부정 패널 측에서조차
통계 결과를 부정하기란 쉽지 않았으니까요.

구체적인 통계 앞에서, 통계의 맹점을 짚은다 한들,

충분히 기술 진보의 결과물을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영적 가치로 눈을 돌리게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저 또한 기술이,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리란 전망에 대해 함께 합니다.


하지만 기술이 단순히 물질적 가치 총합을 늘리는 데에만 활용된다면,

부의 편중, 정신적 빈곤처럼,
지성체로서의 가치까지는 오히려 퇴보할거라 생각합니다.

문화가 없는 지적 문명?

그래서 부정하는 알랭드 보통의 지적에 대해서도

수긍합니다.

부의 구조적 편중과 편차가
대다수의 불행의 원인인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