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24. 15:33ㆍReviews
지난 토요일(2023년 5월 20일)에는 광주광역시 아시아 문화의 전당(ACC)에서 공연한 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 공연을 관람했어요. 매년 5월 18일을 전후로 1980년 5월 18일, 5.18 민주화 운동을 기억하기 위해 여러 콘텐츠들이 기획되고 있고 이번 관람 연극도 그 일환 중 하나 였다고 합니다.
스토리 1.
지난 2005년 전라남도 무안군 남악면에 전남도청이 이전하기 전까지 75년간 전라남도의 도청 역할을 해왔던 건물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전남도청 이야기.
연극의 배경이 되는 현 아시아 문화의 전당에 속한(?) 전남도청 건물 이야기를 간단히 적을게요.
전라남도는 1896년(고종 33년), 전라/충청/경상도 등 5개 도가 남북으로 나뉘면서 생겨난 행정구역이에요.
연극의 무대가 되고 있는 전남도청은,
전남도 회계과 설계 담당자였던 한국인 건축가 김순하(1901~66)씨가 설계를 맡아
1930년 12월에 준공되었다고 합니다. 애초 붉은색 벽돌로 지어졌고,
1946년 흰색 페인트로 칠해졌다고 합니다.
1975년 3층으로 증축되었고,
2002년 5월 등록문화재 제16호로 등록되었다고 합니다.
2005년 전남도청이 무안군으로 이전하면서, 별관 철거를 비롯한 일부 변경이 있었고,
같은해 12월 우규승의 '빛의 숲' 문화전당 설계안이 선정되었습니다. 이에 5.18구속부상자회 등으로 구성된 옛)도청보존을 위한 공동대책위가 천막 농성에 돌입하며
2008년 12월 전당공사는 잠정 중지되었고,
2010년 별관을 보존안이 결정되었습니다.
스토리 2.
연극은 2008년 철거 현장에, 전남도청 벽을 하얗게 칠하던 노인 김영식이 투신하는 소동에서 비롯됩니다.
별관 철거가 잠정 중지되던 2008년을 시작으로 1962년부터 5.18 민주화운동이 발생한 1980년.
마지막 항거지로 항쟁에 얽힌 김영식 가족을 중심으로 기억과 보존을 주제로 펼쳐져요.
영화 '박하사탕'의 '나 다시 돌아갈래!'와 같은 현재 시점에서
과거 회상과 현재와 가까워지는 시간 흐름 구성은 비슷했습니다.
무대 구성 .
일반적으로, 무대-객석이 마주하는 형태만이 아닌, 총 4개의 무대를 입체적으로 활용한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물론 각 4면의 무대 또한 3개 층이 있는 2개의 면, 커튼으로 가리워진 1개의 면, 무대 앞에서 멀리까지 바닥으로 펼쳐진 1개의 면 등
각각의 무대도 구별되게 구성했어요.
각 무대면을 이야기와 시기에 따라 바퀴 달린 객석이 좌우 360도로 회전하며 연기가 펼쳐졌어요.
그래서 객석 앞의 공간에 한정된 보통의 연극과 달리,
무대-객석에 따라 소리, 조명의 역할이 중요할거라 생각했어요.
배우들의 발성, 효과음 그리고 관객의 이목을 유도하는 spot light의 활용.
소리/조명이 약간 뭉게지는 느낌을 보완하면 좋았을거라 생각이 들었어요.
상징 .
1930년 지어진 건물이, 1946년 붉은 벽돌을 하얀색으로 덧칠됐어요.
일제 강점기의 역사 위에 새로운 시대로 출발하기 위함이겠죠. 가장 좋은 것은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이였겠지만, 1946년 한국의 상황은 그럴 기술도 여유도 없을 때였으니, 흰색 페인트를 덧칠하는 것만으로 새시대를 맞이하는게 더 수월했을 겁니다.
1960년대 초. 영식의 아들 혁이 태어난 당시. 이승만의 독재가 가고 박정희의 독재가 시작된 시기에요. 어린 혁은 이제 막 성장하는 민주주의를 상징한다고 생각해요. 흰색의 벽돌 위에 색색의 그림을 그리듯, 다양한 민의를 도청이라는 행정 공간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지만, 페인트공 영식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둘 수 없죠. '흰 벽 위에 흰 색으로 그림을 그려라!' 다정한 아빠의 말이지만, 흰색 배경에 흰색 그림이 드러나나요. 표현은 하되 표현을 제한하던 시기, 박정희 독재 시기를 상징한다고 생각해요.
1980년대. 드디어 박정희가 죽고, 민주주의가 피워나나 했는데, 전두환 신군부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어요. 이제 20대에 가까워진 혁이는 동료-친구들과 흰색 벽 위에 짙은 색으로 전두환을 상징하는 문어, 여러 표상들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5.18 즈음 죽음을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 혁이를 찾아나선 엄마 또한 죽음을 맞이해요. 5.18 이야기에요.
어린 혁이와 엄마가 도청 건물에서 나와, 무대 오른편을 돌아 한 바퀴 크게 돌아갑니다. 두 사람은 사라지고, 두 사람을 따르던 추억의 소리는 무대 왼편으로 나와 열려 있던 도청 건물의 문안으로 들어가요. 그리고 문이 닫히죠. 추억이 시작된 건물에서 추억이 퇴장하는 거에요.
맺음말 .
정말 오랜만에 본 공연 예술이였어요. 어릴 때부터 연기, 연극처럼 바로 내 앞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를 접할 기회가 적었고, 그렇다보니 연극을 찾아보러 갈 기회도 적었거든요. 학부 시절 교양 필수였던 '문화의 이해'에서 '연극의 이해'를 수강하면서 한 학기 4편의 연극 관람과 분석 리포트를 작성했거든요. 비록 4편 뿐이었지만, 그 때 무대-연기-이야기가 연결되는 구성에 집중해서 보는 버릇이 생겼나봐요. 그래서 이번 연극도, 이야기에 무대-연기는 어떻게 호응하나에 집중하며 관람했어요.
상설 공연이 아니라서 또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5.18과 관련된 이야기를 시대에서 한 가족-개인의 서사로 줄여냈어요. 조금더 감정 변화를 크게 가져갔으면 어떨까란 아쉬움이 남았네요. 눈물을 쏟고 싶진 않았지만, 글썽일 정도는 되야 기억 외에도 감정 어딘가에도 남지 않을까요?
<참고>
-'옛 전남도청 별관 논란 일지', 2010-07-29, 연합뉴스
-'109년 '광주시대' 막내린 전남도청, 2005-10-14,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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