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정체성 그리고 존재. Ghost in the shell, Episode 2. TV Serises.

2012. 9. 29. 02:11Reviews

우리가 외부의 대상(물건, 사람, 환경)에 대해 인지하는 첫 번째 조건은 감각적으로 전해져 오는 자극의 형태입니다.


후각이 예상외로 기억과 매칭되어, 그 기억을 상기키니는 매우 예민한 자극이라는 말도 있지만,

보통은 또는 일반적으로 시각적 자극이 그 기억을 끌어내는 단초로 이해하곤 하죠.

(하지만 예상보다 시각도 그리 정교한 기억의 단초는 아닌거 같습니다. 착각을 하기도 하니까요. 상대적으로요.)

(전 샤넬에서 나온 향수에 민감합니다. 그 시크하단 느낌? 길을 가다가도 샤넬향이 나면 주위를 둘러보게 됩니다.)


똑같이 생긴 일란성 쌍둥이가 있습니다.

유전적으로도 동일하지만, 우린 각 쌍둥이에게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을 각 아이를 부르는 식별 음성 신호로 사용합니다.

성장과정에서 '이름'을 부르는 음성 신호에 자기 자신을 매칭 시킵니다.

비로소 그 음성신호를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각인하게 되는 거죠.


쌍둥이 이지만, 각기 다른 경험에 노출됩니다.

물리적 상황에 따라서 다른 물리적 반응을 하게 되고, 움직임과 같이 근육의 발달에도 다른 영향을 주죠.

쌍둥이들이지만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외형적으로도 조금씩 차이가 생깁니다.


일란성 쌍둥이 A,B가 있고, B가 사고에 의해 물리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죽었다는 거죠.)

이 때, A를 복제하면 B가 나오나요? 그 복제는 생물학적으로A의 복제일 뿐 B가 될 수 없습니다.

쌍둥이라 할지라도, 태어남과 동시에 각기 다른 감각적 자극, 경험에 의해 다른 정체성의 개체로 성장했기 때문이죠.

유전적(선천적)으로 동일한 물리적 실체라 할지라도, 후천적 경험에 의해 '개별적 존재'로 분화된다는 거죠.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오늘 오랜만에 Ghost in the shell TV판 이야기들을 다시 돌려보게 됐습니다.

그 중 첫번째 시리즈의 2번째 이야기(에피소드)는 기억-존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카고 타케시는 무기 설계에 천부적인 자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였습니다. 하지만 신체가 매우 병약했죠.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기에는 사람의 신체부분은 물론, 뇌까지도 전자두뇌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의 시대였습니다.

태생적인 상태에서는 20살을 넘기기 힘든 카고였지만, 

부모의 신앙적인 이유로 신체도 전자의체로, 두뇌도 전자두뇌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8살이 되어 카고는 죽었습니다.

'육체가 죽으면 종교는 사라진다.'는 카고의 유언으로 그의 뇌는 친구에 의해 전자두뇌화 되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의 기억(데이터 베이스)가 전자두뇌로 복사된 셈이죠.

카고의 친구는 카고의 유언에 따라 카고의 전자두뇌를 생전에 개발한 다각전차에 장착됩니다.

그리고 카고의 뇌가 이식된 전차가 폭주(?)를 일으키며 카고 다케시의 부모님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이를 저지하는 공안 9과.


사건의 밑단부터 수사해가던 공안 9과는 이런 배후 정보(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지만, 

그들에게 전차는 저지 대상일 뿐입니다.

결국 전차를 물리적으로 해킹하고 물리적 자극으로 전차 안의 전자두뇌를 태워버립니다.(기억을 지워버립니다.)

전자두뇌와 연결되는 그 잠깐의 순간에,

두뇌에 기억된 기억들이 외부 접속자(전자두뇌에 Dive했다고 하는 표현을 쓰더군요.)에게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그리고 그 전차의 폭주는 카고가 부모를 원망하기 위해, 복수를 위해 찾아간게 아니라,

병악한 몸은 죽었지만, 강철 전차처럼 강해진 자기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임을 '공감'하게 되죠.


한 개인은 그가 갖고 있는 물리적인 실체(물리적 존재) 못지 않게, 기억으로도 구별됩니다.

주변 사람들, 주변 환경 속에서 한 개인이 남긴 기억, 관계된 이야기들이 

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는데에 중요한 근거가 되죠.


28살의 나이로 기억이 사라진 카고 다케시는 그런 의미에서 신체 죽음 후 일주일 뒤에 일어난 폭주로,

다시금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전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억의 말소와 함께 '자기'로서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더이상 기억-경험의 축적이 사라져 버리는 존재. 

카고는 이제 그 기억의 외연, 주변사람들에게 남겨진 기억의 뭉치로만 존재하게 됩니다.

더 이상의 성장, 퇴화없이 망각의 대상으로만 존재할 뿐이죠.


28살에 요절한 선배와 29살에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세상에서 사라진 사촌동생.

17살의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등진 사촌형. 70대 후반으로 기억되는, 매년 잘 익은 살구를 가져다 주셨던 동네 할아버지.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살았고, 물리적으로 소멸되는 순간까지 누적된 기억의 덩어리로 주변인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물리적 실체로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을 기억하는 주변인들이 있는 한.

기억을 공유하는 존재들로서 함께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더 오래 살아가고 있는 '나'가 그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는게 아닐까요?


기억하는 것이, 사라져버린(지나가버린) 그 사건 사람에 대한 예의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