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트를 입고 싶다.

2014. 12. 30. 23:45Diary

원래는 '수트가 입고 싶다.'라고 썼다가

'수트를 입고 싶다'고 고쳤다.

수트를 입어보지 않은 적이 없고,

내가 입어볼 옷 중에 수트가 하나의 선택 안이니까.

그 느낌을 잘 살려서보자면 수트 그 자체 지향하기 위해 '~를' 쓰는게 맞는거 같아서.


내 첫 수트는 2006년 즈음이였나?

누나의 결혼식 겸, 곧 준비하게 될 입사면접을 겸사겸사해서였다.

그 때 내 몸이 키 182에 몸무게가 67~8을 오갔던 것 같다.

군 휴가 중이였고, 군 입대전 몸무게가 63~4. 첫 군 휴가 때가 76.

군 복무 1년이 되던 즈음은 다시 64~5를 오가던 때였다.

제대를 몇 개월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라 몸에, 특히 배에 살이 조금 붙어

나름 60 후반의 몸무게가 되었었다.


내가 처음 샀던 수트는,

백화점에서 부분 수선이 가능한 수트였다.

원버튼에 120수 정도,

바지 길이는, 굽 3~4센티미터의 구두를 신어도 구두를 살짝 덥는,

제법 보온이 되던 검은색 수트였다.


그 수트 한 벌, 

대학 졸업 전에는 학과 발표가 있을 즈음에 발표의상이나

경조사가 있을 때를 요긴하게 입곤 했다.

2009년 여름이 되기 전.

첫 회사의 인턴 45일을 위해서 여름용 수트를 장만했다.

까슬한 원단에, 땀이 많은 여름이라 바지는 2벌.

이번에는 바지를 좀 더 짧게, 아래로 갈 수록 통이 좁아지게 맞췄다.

여전히 검은색 구두 한 족으로 그렇게 여름 수트가 필요한 시기를 보냈다.


2009년,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던 즈음.

나름 아픈 사랑을 경험하며, 언젠가는 다시 올 누군가를 위해서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니지 않던 트레이닝 장을 3개월 다니며,

다리, 허리, 어깨 그리고 복근까지

멋진 몸매, 건강한 몸을 갖기 위해 운동했던 적이 있다.

73킬로그램에 체지방율 8%.

태생적으로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서,

몸자체의 굴곡이 많지 않았던지라 그 이상의 몸을 만들기는 힘들었다.

대신 인턴을 마치고 입사한 회사 초반에는 제법 수트가 잘 맞는 몸이였던지라,

바지와 셔츠 그리고 가벼운 자켓을 입곤 했다.

맞춤 셔츠 손목에는 내 영문 이름도 박음질하고,

짙은 하늘색 여름 셔츠를 팔꿈치까지 꼼꼼히 접어 올리면,

등 뒤의 광배근에서 29인치 허리 그리고 스케이팅하면서 생긴 엉덩이 굴곡으로

제법 괜찮은 수트라인이 나왔다.

물론 바지는 좀 짧다 싶을 정도로, 서있으면 발목이 살짝 보이는 정도.

그래서 오히려 하체가 더 길어보이기도 했고.


물론 원래부터 격식을 차리며 수트를 입는 걸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었다.

첫 회사에 '신입'이라는 분위기에 도취되었던 그 몇 개월이 지나자마자

수트가 답답했다.

'수트'를 입어야하는 조직의 문화, 그런 '전형적인 삶'에 대해서 회의가 밀려왔다.

아팠고, 내 첫 회사에서의 첫 휴가는 그렇게 병원에서 흘러갔다.

그리고 9개월 뒤에, 나는 수트를 벗었다.


이후에는 보다 밝은 색의 옷에 더 손이 갔다.

선이 단촐해도 더 내 몸에 붙는 옷, 그래서 옷이 몸과 함께 맵시로 드러날 수 있는 옷을 더 챙겼다.

노란색, 녹색, 파란색의 바지에 컨버스화.

픽시를 갖고, 도시의 거리를 달리기에 적당한 옷들.

'옷'으로 표현되는 자유로움과,

자유로움으르 위해 선택되어진 '옷'을 입어오고 있다.


그러다 요즘은 부쩍 다시 수트가 입고 싶어진다.

자유로움의 이면에 있는 여유, 느슨함을 다시 죄여줄만한.

그 하나가 '수트'가 아닌가 싶다.

다시 '수트'의 맵시를 위해 운동을 챙겨하고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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