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커피 두 개

2015. 10. 14. 17:53Diary

책상 위에 있는 머그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어제 퇴근 전에 헹궈두었지만 소독도 할 겸 다시 뜨거운 물을 채워 기울여 빙빙 돌린다.

그렇게 헹군 물을 버리고,
뜨거운 물 반에 차가운 물을 반 채워 넣는다.
이렇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물을 미지근하다고 하는데,
‘미지근’이란 말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형태를 의미하는 것 같아서.
난 미지근한 물 대신 '따신 물'이라고 하는게 더 와닿는다.

체온보다 높은 온도의 물을 따라두고 두 손으로 가만히 감싸면,
따스함이 손으로 몸으로 전해진다.
어떻게 부르든, 요즘처럼 밤낮 기온차가 심해지는 날은
그 '따신 물' 덕에 하루를 따뜻하게 시작할 수 있어 좋다.

한 달에 한 두 번 먹을까 싶은 인스턴트 커피를 한 개 꺼내
설탕이 있는 부분은 손으로 잡고 크림도 조금만 나오게 해서 마신다.

1월에 입대해서 훈련병과 대기병을 거쳐 도착한 자대는 매우 추웠고
감옥같지 않았지만, 마음을 사회와 나름의 단절감을 느꼈던 곳이었다.

3명의 병사가 근무하던 곳.
가장 낮은 계급의 병사가 6시에 일어나 막사 청소를 한다.
창문을 열고, 걸레를 빨아 바닥을 닦고, 책상 위에 널려있는 서류를 정리하고.

그 곳에서 '봉지커피'는 나에게는 간절한 담배 같았다.
고될 때라 설탕를 걸러내지 않고,
한 잔 분량의 물에 봉지커피 2개를 한꺼번에 타서 마셨다.
그 커피의 달달함이 위로가 되던 때였다.
많이 마시던 때는 하루에 3~4잔도 마셨던 것 같다.

봉지커피 한 개를 집어 안쪽에 설탕만 남기고 머그에 붓는다.
따뜻한 물을 컵 절반을 붓고, 커피봉지 속의 설탕은 세면대에 버리고 물로 녹여, 흘려 보낸다.
그런 사이 인스턴트 커피의 진한 갈색이 머그 안에 고루 퍼져 있다.
입술이 데이지 않게 조심히 한 모금, 입을 댄 머그에 조금 묻어나는 커피를 다시 입술로 닦아내고
그렇게 커피 한 잔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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