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희망으로.

2012. 12. 20. 13:11Diary

노인들을 위한 나라 한국.

그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그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그들의 주머니에 자식들의 미래 연금을 가져다 꼽아주는.

환율정책, 세금이 시줄 물가에 고스란히 묻어나고

야금야금 사회의 '부가 집중'되는 그런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제 선택의 기준이였습니다.


빈민의 개인적인 무능력을 손가락질 하기 전에,

각자의 기득권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고민해보면,

새로운 대통령처럼 나의 노력보다, 그 이상 물려받은게 많다는거 알 수 있죠.


여행을 하면서, 내 언어를 지워버리면 기득권이 사라지고 나락으로 떨어지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한국어를 한다는 것만으로, 전 한국 사회에서 갖고 있는 상대적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겁니다.

'공부'를 했고, 노력해서 나름 좋은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취업을 했고, 그래도 나름 매출상위 30대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대기업 신입사원이였죠.
(사실 회사보다 그 부서, 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제 첫 커리어로 시작하기 위해 선택한 겁니다.)


그리고 새내기 사회학 시간 교수님의 말씀.


'그 뒤에 졸고 있는 애들, 너희가 지금 수능을 잘봐서 여기에 입학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지만,

그자리에서 너희보다 더 열심히 고민할 친구들은 단지 1~2문제 차이로 그 기횔르 잃어버렸다.

그 자리가 오롯이 너네들의 능력으로만 쟁취했다고 생각하지 마라.

사회가 그 자리를 만들었고, 한정된 자리를 가졌기 때문에 더 책임감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성공을 오롯이 개인의 능력, 노력으로만 보죠.

관심이 있다면 실리콘벨리를 보세요. 그 곳의 문화가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얼마만큼 뒷받침해주는지.

성공과 투자, 그 순환고리가 지금의 실리콘밸리를 만들었죠.

개인과 그 사회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착취'라는 말은 쓰지 않겠습니다.

한국 사회는 소수의 자본 이익이 다수의 소액 부담에서 비롯되는 경제구조를 가졌다고 봅니다.

경제의 3주체, 가계, 기업, 정부.
단위이 주체중 가장 취약한 가계는 정부의 환율정책과 세금정책의 우대를 받는 기업에 

노동력과 소비로 생산요소를 제공하죠. 



자기 권리를 지키기 취약한 구조에서 사회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사회적 안전장치가 '복지'라는 형태로 돈이 아니더라도 교육과 같은

새로운 밥벌이 기술을 터득하는거겠죠.

그런데, 이제 국가가 개인, 아니 젊은이들에게 보장해주는 건 그리 많지 안아보이네요.

한국의 젊은이들은 유럽의 젊은이들처럼 부모의 연금에 기댈 수도 없는데요.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경제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각개대응을 할 수 밖에 없네요.


기댈 사람은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