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랑(Jin Roh) : 오시이 마모루가 그린 빨간모자 아가씨 속 잔혹한 현실 이야기

2012. 11. 6. 17:04Reviews

낭만이 가득한 동화, 

하지만 잔혹한 현실.


그림(Grimm) 형제의 동화들, 유명하죠?

주로 디즈니(Disney) 애니메이션으로 접한 이야기들이

그림 형제의 동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헨델과 그레텔

-브레멘 음악대

-개구리 왕자

-라푼젤 등


많이 알려진 빨간모자(Rotkäppchen)도 

그림형제가 지은 이야기입니다.


<독일어 Rotkäppchen, Little Red Riding Hood라는 의미.>



갑자기 왠 빨간모자 이야기?


인랑(Jinroh),

이야기는 빨간모자를 모티프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늑대와 빨간모자의 이야기죠.


늑대는 소녀보다 더 먼저 집에 돌아와 

빨간모자 소녀의 어머니를 잡아먹고 

그 고기를 부엌 한켠에 둡니다.

그리고 피를 담아둡니다.


할머니 집에 다녀온 빨간모자는 

집에 돌아와 부엌의 고기로 허기를 달래고, 

담겨진 피를 포도주로 알고 목을 추깁니다. 

그리고 인두껍을 쓰고서 사람인양 행새하는 늑대에게 

그 소녀마저도 먹히고 마는 

그런 잔혹한 이야기입니다.


오랜만에 

오시이 마모루 제작,

공각기동대의 촬영감독이었던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의 인랑(Jin Roh)을 다시 보면서,

처음 봤을 때 놓쳤던, 

작품의 상징에 대해 다시 곱씹어 보았습니다.

 




감독, 오시이 마모루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공각기동대 극장판과 

연이은 TV판 시리즈들을 통해서 

정체성(Identity)를 주제로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인랑(Jin Roh)은 그런 공각기동대 이전 작품으로, 

감독이 자신만의 주제의식과 시선을 잡아가던 

초창기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배경

2차 대전이 끝나고 

전후 복구와 경제개발이 한창인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갈등을 무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방의 자치경찰(자치경)과 수도경찰(수도경)이 창설되구요.


주인공인 후세는 

수도경찰 안의 특기대(특수기동대)원으로 

반정부 무력 항쟁을 하고 있는 

무장집단에 대응하는 경찰특공대(?)와 같은 인물이죠.


자치경과 특기대 안에 침투해있는 

비밀집단인 인랑(늑대 인간이란 뜻). 

사실 후세는 그 인랑의 최정예입니다.


그는 특기대원으로 위장하여 

자치경과 특기대를 해체하려는 

특기대 공안부의 공작을 역이용합니다. 

후세는 자폭하는 테러리스트 소녀 앞에서 

무기력한 특기대원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거대한 두 조직의 술수를 파괴하는 

'늑대인간'의 역할을 한다고 할까요?


극 안에서 이뤄지는 

여러 조직간의 속고 속이는 내용들은 

직접 보시는게 좋을거 같습니다.

(자칫 스포일러로 재미 없을테니까요.)




동화를 바라지만, 

현실은 냉혹 그대로의 '현실'

시간이 지나면서 

'꿈'이라는 단어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들립니다. 


나이가 들 수록 꿈보다는 

'계획'이란 말로 많은 부분 대체되죠.


이상적인 '꿈'은 단지 꾸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각자에게 꿈이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어서 크길 바랍니다. 

말문이 트이고, 커가는 그 모습 자체가 동화같이 신기한 일이죠. 

아이의 입장에서도 어서 크길 바랍니다.

청소년들은 어서 성인이 되서 여러 호기심들을 직접 충족시켜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이야기들이 

말 그대로 꿈과 같은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언론의 Issue Framing에도 큰 영향이 있겠지만, 

삶은 더 현실적으로 각박해져가고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내일은 2013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네요.

소위 수능 잘보면 뭐하죠? 

매년 SKY라는 대학에 만명 넘는 학생들이 들어가지만, 

대부분은 

고시나 공기업, 대기업 등 

소위 안전에 매몰된 직장인이 될 뿐입니다. 

(저도 생명공학도를 지원했다가,

재수해서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갔지만...

직장인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네요.)


그 안에서 각자 삶의 각박함에 시달리다 

때가 되면 결혼하고, 

전 세대가 각인시킨 사회적인 절차를 답습해갑니다.



친구를 사귀기 보다 

자기에게 도움이 될 사람들을 찾아나서죠. 

각자가 가면을 쓰고, 

그 안에 자신의 인간성을 뭍어둡니다. 

후세가 특기대 갑옷 안에 자신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하는 야수가 되는 것처럼요. 


사회적 직급 체계 아래에서

아래 사람들을 억누르는 구조 속에서 

자신의 야성을 발휘합니다.


인랑이 현실과 만나는 부분이 그 지점입니다.


결국에는 '복수'를 하고

행복한 결말로 알고 있던 '빨간모자 이야기'에 대한 기대

동화 같은 세상에 대한 기대를 안고 보았던 이야기.


하지만, 현실은

원작 'Rotkäppchen'의 잔혹한 모습같아요.

내면의 야성을 숨긴 후세(늑대인간)같은 사람.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히틀러의 제 3제국의 독일인들처럼, 

사회 구성원 각자가 뭐가 옳고 그른지 생각하지 않으면, 

집단 논리로 사회는 그런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잔혹한 동화같은 삶을 살아갈지, 

모두가 바라는 해피앤딩 같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안고 살아갈지,

그 몫은 우리 모두가 결정 하는거겠죠? 

비겁하게 피하지는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