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지상철. 20대, 30대

2015. 11. 27. 17:22Diary

2호선 전철에 올라탔다.

내가 들어서는 서울 2호선 전철역은 지하에 있으니 '올라'라는 말이 맞을까 싶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교통카드를 체크하고, 계단을 한 번 더 내려가면, 전철을 탈 수 있는 플랫폼이 나온다.


스크린도어에 비춰진 내 모습을, 위에서 아래로 한 번 훑어본다. 

머리 모양은 어색하지 않은지, 가방 끈에 옷이 비뚤어지지는 않았는지, 그렇게 옷 매무새를 살피다 보면,

내가 탈 전철이 들어오는 알림음이 퍼진다.


전철 문이 열리는 곳으로 자리를 잡는다.

 '1-3'이나 '2-3'처럼 두 개의 수를 연속으로 이었을 때, '소수'가 되는 자리에 서게된다.

내가 만든 징크스. 개찰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7번 개찰구를 지나 '9-1' 앞에 선다. 2호선 신도림 방향 전철이 들어온다.



서울대 입구역, 봉천역 그리고 신림역을 지나면, 전철은 밝은 세상으로 뚫고 나온다. 

나선다는 말을 써도 될 정도로, 답답한 어둑한 지하를 나와 

자동차 도로보다 높은 고가 위를 전철이 달리고 있다.


신대방-대림 지상구간은,

도림천 위로를 따라 이어진 고가철로를 달리게 된다.

그 위를 달릴 때면, 전철 좌우로 갈색과 회색의 건물들이 즐비하다.

그래도 계절마다 색이 바뀌는 가로수가 있어 밋밋하지 만은 않지만,

재개발을 위해 방치된 건물과, 중국어가 어지럽게 적혀 있는 대림역 부근의 간판을 볼 때마다

지하의 삭막함에서 벗어난 줄 알았는데, 다시 그 빈 자리를 도시의 삭막이 채우는 것 같다.


아직 2G 휴대폰이 만연하던 20대 초중반에 이 전철에는

전화기 화면 보는 사람, 책을 보는 사람, 음악을 듣거나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섞여있었는데,

이제는 대부분이 전화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난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 싶으면서도,

어느 샌가 전화기를 꺼내 괜히 만지작, 아무런 연락도 알림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켰다. 


전철은 다시 신도림에서 지하로 흘러간다.

문래, 영등포 그리고 당산역에 이르러서야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다.

당산에서 합정까지, 전철은 한강을 가로지르는 철교를 달린다.

그 곳은 비, 눈, 햇볓 쨍하는 날까지, 좋으면 좋은대로, 우울하면 우울한대로

풍경을 바라보는 내 눈을 실망시키지 않는 구간이다.

자리에 앉아있다 귀 속으로 들리는 소리와 그 풍경을 함께 즐기다보면,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음악과 풍경이 어울려 흘러간다.


녹색 전철. 이걸타고 방배동 - 신촌을 오갔었던 20대 초중반. 

그 때도 이 길을 지나며 가을을 맞이 했을텐데. 그 때도 지금의 감성을 담았었을까?

요즘은 낙성대 - 홍대 앞을 오간다. 

매일 마주하는 그런 그림같은 가을 길을 미쳐 걸어보지도 못하고 흘리듯, 눈으로 담아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