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촐한 삶 : 밥솥에 대해서.

2015. 12. 16. 22:13Diary

발달한 기술 덕에 일상이 편리해졌다.

'편리해진'이란 말은, 과거의 어느 불편한 시점을 전제로 한 말이 아니던가?


언제가 불편했었을까?

국물을 끓였던 그릇이 처음부터 금속은 아니었을 테고,

어쩌면 옹기처럼 흙으로 빚은 그릇이였을 텐데.

그 그릇도 빚어지기 전에는 

불 위에 무언가에 담겨진 그릇에 우연히 올려져

불을 직접 쬐지 않고 음식을 익히는 방법이 고안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지금으로 거슬러 오면,

이제는 콘센트에 플러그를 꼽고 버튼을 누르면

기기가 알아서 시간을 맞춰 온도를 조절하고

정해진 시간에 음식을 만들어 내는 지경이니.


최초에 국물 요리를 고안했을 때와 비교하면

편리란 말 보다 진보했다고 하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보된 기술도 결국에는 최초의 원리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열로 재료를 데워 익힌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최초의 도구보다 더 복잡한 전자부품이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전기나 가스와 같은 음식 외 원료를 필요로 한다는 것.


오늘 문득 집에서 저녁을 지어 먹으려고

잡곡밥을 전기압력밥솥에 올렸다.

자주 청소하지도 않고, 거의 8년이 되어가는 거라

그다지 청결하다고도 할 수 없다.

그 밥솥에 잡곡밥만을 고수해서 지어먹다보니,

더더욱 지저분해져만 간다.

오늘도 역시나. 밥을 다 퍼낸뒤에 밥솥은 꼬질꼬질한

잡곡밥 수증기 찌꺼기들이 여기저기 달라붙어 있었다.


저녁을 다 먹고서는

그 밥솥을 간단히 물로 씻어냈다.

전자기기인지라 전자부품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게

여간 신경쓰이지 않았다.

이럴 땐 차라리 그냥 금속으로 된 밥솥단지 였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곳으로 옮겨올 때도,

저 전기밥솥이 짐이였는데,

이 참에 정말 밥솥단지로 기술을 역행해 볼까싶다.

밥솥단지가 익숙해지면,

차 트렁크에 챙겨서, 야외에서 돌을 괴고 밥을 지어볼 수도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