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2. 16 교정의 첫번째 벤치에서...

2012. 9. 13. 16:38Diary

 뻐근했던 눈꺼풀. 연이어 터지는 하품. 정작 피곤한지 느끼지 못했지만 눈으로 나를 관찰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내게서 피로가 묻어남을 볼 수 있었던 하루였으리라. 바로 어제. 나의 모습이 그러했다.

 오늘 어느 가을 맑은 날처럼 따스한 햇빛과 서늘한 바람이 부는 날이다. 오랜만에 찾아오는 교정의 구석 노상 의자에서 내 오른손에 내리쬐는 따사로움을 보면 이렇게 글을 적고있다는 것이, 그렇게,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축복'이다.

 이따금씩 기계로부터 해방되어 원래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지금 겨울의 정취 속에 파고드는 차소리와 쇳조각 흔들리는 날카로운 금속성의 잡음이 또 다시 그런 욕구를 끄집어 놓게 한다.

 '놓여지다.' 놓는 주체가 내가 됨에도 '~해지는' 수동, 피동적 의미로 나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작가의 마음. 내가 동경하는, 그런 세상의 작은 조각으로부터도 의미를 끄집어 내는 예리한 작가의 능력만큼이나 그 능력을 과신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을 나 또한 모방하고 싶다. 나를, 나와 내 주위를 감싸 안는 자연만이 존재할 수 있는 곳에 '놓아'두고 싶어지는 날이다.